이낙연 캠프는 겹치는 지지층 흡수…이재명 캠프는 호남 전략 투표 성향에 기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 20대 대선 경선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9월 1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성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나라와 국민과 당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두고두고 갚겠다”고 후보 사퇴를 밝혔다.
대선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빅3’로 분류됐다. 하지만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가 나왔다.
특히 지난 9월 12일 발표된 1차 일반당원·국민선거인단 투표(1차 슈퍼위크) 결과가 사퇴 결단의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세균 캠프에서는 1차 선거인단 64만 명 중 약 20만 표 확보를 기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결과는 2만 14표(4.03%) 확보에 그쳤다. 1차 슈퍼위크까지 누적 합계 득표율은 4.27%로 4위까지 밀렸다. 3위를 차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격차도 7%포인트(p) 이상 벌어졌다. 이에 경선 완주 동력이 소진됐다고 판단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20대 대선 경선 레이스를 중단하면서도 정세균 전 총리는 다른 후보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특정 후보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하나 되는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만 답했다.
정세균 전 총리의 중도 사퇴로 남은 후보들의 캠프는 복잡한 계산에 들어갔다. 정 전 총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의 지지층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 추석 연휴가 끝나고 치러지는 호남 순회경선에서 정 전 총리 지지층의 표심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호남 경선은 대의원과 권리당원 수가 전남·광주 약 12만 8000여 명, 전북 약 7만 6000여 명 등 총 20만여 명으로 전체의 30%에 달한다. 지역순회 경선 중 가장 큰 규모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정 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북의 맹주’다.
여권의 한 전략통은 “정세균 전 총리는 6선 의원에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을 거치며 이른바 ‘대통령 빼고는 다 해 본’ 25년 경력이 넘는 정치인이다. 그 과정에서 전국에 탄탄한 조직을 구축했다. 국민선거인단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표를 받았지만, 앞서 지역순회 경선에서는 조직을 통해 나름 나쁘지 않은 대의원 득표를 얻었다. 남은 지역에서의 정 전 총리 조직표가 어느 후보에게 갈지가 향후 민주당 경선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4일 대전·충남 경선부터 12일 1차 슈퍼위크까지 이재명 지사는 누적 합계 득표율에서 51.41%(28만 5856표)로 여전히 독주체제를 유지했다. 2위 이낙연 전 대표는 31.08%(17만2790표)를 득표했다. 다만 득표율 54%대까지 올랐던 이재명 지사는 다소 주춤하며 과반을 턱걸이로 유지했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득표율 30%를 돌파, 1위 후보와 여전히 20.33%p 큰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추격을 불씨를 살렸다는 평가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가 50%를 훌쩍 넘겨 대선 본선에 직행하느냐, 이낙연 전 대표가 호남을 등에 업고 결선까지 끌고 가 역전에 성공하느냐는 호남 경선에서 정세균 전 총리를 지지하던 표심의 향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에 두 후보 모두 정 전 총리 지지층에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 지사는 정세균 전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 진행된 한 기자간담회에서 “2008~2010년 정 후보께서 당대표 하실 때 제가 상근대변인으로 모셨다. 지금 저도 정 후보님의 식구라고 할 수 있다”며 “오늘 사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에 역할을 잘하실 어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 역시 “결단에 이르기까지 고뇌가 오죽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며 “품격과 절제, 푸근한 인품과 공익으로서의 책임감, 개혁을 향한 책임 있는 비전을 보여준 정세균 정신의 실천은 저희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전 총리의 양극화 해결공약 중 하나인 ‘분수경제’를 언급하며 정책 측면에서의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정세균 전 총리 사퇴가 자신들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후보의 성향이 비슷한 면이 있어 지지층이 공통점이 많고 겹친다는 이유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낙연 후보와 정세균 후보의 지지자는 겹치는 지점이 크다. 경선 초기부터 두 후보 간 단일화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정 전 총리가 이낙연 전 대표를 공개 지지 선언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단일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정 전 총리 지지층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앞서 사퇴 발표 전 정세균 캠프 긴급회의에서는 완주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25~26일 호남 경선까지 치르자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세균 전 총리의 최종 결정은 사퇴였다. 이는 정 전 총리가 호남 경선 전에 그만둬야 현재의 이재명 후보 독주 경선판에 견제를 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이재명 지사 측은 호남 지지층의 전략 투표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후보 측 관계자는 “호남 지역 지지자들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이재명 후보다. 이런 모습을 잘 판단해 지지를 보낼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 이재명 지사가 이낙연 전 대표에 호남 지역에서도 적합도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9월 5일부터 9월 7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관련기사 [9월 여론조사] ‘양당별 양자대결’ 홍준표 36.6% vs 윤석열 30.0%)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도’ 경선 양자 가상대결에서 이재명 지사가 35.6%를 기록, 24.0%의 이낙연 전 대표를 11.6%p 차이로 앞선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광주·전라 지역을 보면 이재명 지사 48.0%, 이낙연 전 대표 27.6%로 20.4%p의 더 큰 격차를 보였다(자세한 사항은 조원씨앤아이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