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적극적 반박에도 의혹 재생산, 여권 주자들도 편 갈려…“호남 결과 따라 경선 전체 판 좌우”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이 정치권 태풍의 핵으로 등장하면서 영화 ‘아수라’가 역주행하고 있다. '아수라'는 9월 24일 기준 영상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요즘 뜨는 영화’ 항목에 이름을 올렸다. 개봉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모티브 삼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가상 도시 안남시를 중심으로 신도시 개발 이권을 둘러싼 검·경, 지자체, 지역 마피아의 첨예한 이합집산 과정을 그렸다.
2016년 개봉한 영화까지 소환한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의 핵심은 이렇다. 시작은 2015년이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택지 개발 이익을 공공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취지로 ‘성남판교대장도시개발사업’ 주체를 민간에서 민간·공영 공동 개발 사업으로 바꿨다. 이 시장은 개발 이익 5500억 원을 성남시로 환수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대장동 개발 사업이 민간·공영 개발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성남시 환수액을 제외한 나머지 개발 이익이 민간 업체에 배분됐다. 여기가 논란의 발단이다. 환수액을 뺀 나머지 개발 사업 이익 중 상당액을 가져간 회사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지목됐다. 그런데 화천대유는 특정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기업이었다. 9월 20일 이낙연 캠프가 직접 화천대유를 거론했다.
이낙연 캠프 수석대변인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은 사업계획 접수 하루 만에 민간 사업자로 선정됐다”면서 “사업 지분 절반을 보유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1830억 원을 배당받는 동안 실질 지분이 7%에 불과한 화천대유와 개인투자자 6명이 4040억 원을 배당받았다”고 했다. 오 의원은 “오죽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화천대유 하세요’라는 한가위 덕담이 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 의원이 언급한 성남의뜰은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의 또 다른 핵심이다.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에 응모한 3개 컨소시엄 중 하나은행이 포함된 컨소시엄을 사업파트너로 선정했다. 그리고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하나은행 컨소시엄 참여사들과 공동출자해 개발 사업 시행사 성남의뜰을 설립했다. 그리고 성남의뜰은 설립한 지 1주일 뒤에 자산관리회사를 선정했다. 바로 화천대유다.
채용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사원 수 16명인 화천대유의 2020년 매출액은 6970억 6369만 원이다. 영업이익은 1479억 7684만 원이다. 회계업에 종사하는 복수 관계자는 화천대유 직원 수 대비 매출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화천대유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초호화 고문단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화천대유 고문단으론 박영수 전 특별검사, 이현주 전 하나은행 부행장, 김수남 전 검찰총장,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 강찬우 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권순일 대법관, 이경재 변호사 등이다.
박영수 전 특검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으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특검으로 임명받아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다.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는 경기도에 연고를 둔 야권 중진이다. 강찬우 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은 이력이 독특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소송 당시 변호인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동시에 국민의힘이 추천한 초대 공수처장 후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제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다. 이 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대법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다 ‘국정농단 게이트’ 당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도 화천대유 고문단 일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정황을 종합했을 때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쟁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장동 개발 사업 공모 당시 컨소시엄 선정, 성남의뜰 설립, 화천대유 이익배분 등과 연결고리가 있는지 여부다. 이 지사는 강력한 어조로 선긋기에 나섰다. 이재명 캠프는 ‘대장동 개발사업 Q&A’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자료에서 이재명 캠프 측은 대장동 개발 사업을 ‘모범적인 공익사업’이라고 강조했다.
9월 17일 기자회견서 이 지사는 “누가 이 사업을 해먹었는가. 국민의힘 그쪽 세력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지사는 “뻔뻔하게 개발 이익을 자기들이 먹으려다 실패하니 공격하고, 이번에는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내부 사업자 문제를 가지고 나를 음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9월 18일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로 1원도 받은 일이 없다”면서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을 “부정부패로 상당한 이익을 취했던 ‘새누리 게이트’ 연장인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정의했다.
9월 19일 이 지사는 초강수를 뒀다. 9월 19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1원 한 푼이라도 이익을 취했다면 경기도지사, 대선주자 모두 사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에 맹공 일변도로 임하고 있다. 당 백보드에 ‘화천대유는 누구껍니까’라는 직설적인 문구를 달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지사 해명과 관련해 “이 지사 통장에 1원이 입금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서 “이런 논리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통장에 1원도 입금 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유승민 캠프는 이번 논란을 ‘아수라 게이트’로 명명하며 집중포화에 가세했다. 홍준표 후보는 “해방 이후 최악의 권력 비리”라고 했고, 최재형 후보는 화천대유에 부동산 개발 관련 전문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을 놓고 미묘하게 편이 갈리고 있다. 이낙연 캠프를 중심으로 대장동 의혹을 추궁하는 공격 진영과 이재명 캠프를 중심으로 논란을 진화하는 방어 진영이 나뉜 모양새다. 이낙연 후보는 9월 24일 광주MBC 인터뷰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사안이 아니”라면서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중 김두관 후보와 추미애 후보는 대장동 의혹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후보는 9월 2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대장동을 BBK처럼 만드는 사이 고발 사주 의혹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추미애 후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낙연 캠프의 대장동 의혹 공격은 윤석열 ‘고발 사주’ 물타기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에선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이 9월 25일(광주·전남)과 26일(전북)로 예정된 호남 지역 경선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낙연 캠프는 대장동 의혹으로 촉발된 ‘이재명의 틈’을 공략해 진보의 심장 호남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 할 것”이라면서 “반대로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이 지사가 1위 자리를 수성한다면 민주당 경선 승부의 무게추는 이 지사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