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붙은 대선 전초전 추석 밥상 최대 화두…제보자 조성은과 박지원 친분 ‘양날의 검’으로
사건의 발단은 9월 2일 ‘뉴스버스’ 보도였다. 뉴스버스는 “윤석열 검찰총장 재임 당시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제1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범여권 정치인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사주한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뉴스버스 보도에 따르면 미래통합당 송파갑 후보였던 김웅 의원이 손준성 검사(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로부터 받은 고발장을 당에 전달했다. 당시 손 검사가 맡았던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직무는 검찰 내부 주요 동향 등을 검찰총장에게 직보하고 총장의 내밀한 지시를 이행하는 자리라는 게 뉴스버스 보도의 요지였다. ‘고발 사주 의혹’의 시작이었다. 다만 해당 고발장을 보낸 손준성이라는 인물이 손준성 검사와 동일인인지 여부엔 물음표가 남았다.
뉴스버스가 제시한 고발장에 등장한 피고인 중 범여권 정치인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최강욱, 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등 3명이었다. 이 외에도 언론사 관계자 7명, 성명불상자 11명이 고발장에 거론됐다. 고발장에 명시된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이었다. 뉴스버스는 “해당 고발장은 미래통합당 측에 전달된 뒤 실제로 접수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발 사주 의혹’ 초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임 당시 검찰권을 사유화했는지 여부에 맞춰졌다. 여권은 윤 전 총장이 검찰 조직을 사유화했다며 총공세에 나섰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논란을 ‘윤석열 게이트’로 명명했다.
9월 6일엔 한겨레가 고발 사주 의혹 중심에 있는 고발장 전문을 공개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고발장엔 “범여권·범진보 세력이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한 계획적인 언론플레이를 엄벌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9월 7일엔 KBS가 “2020년 8월 미래통합당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고발한 고발장과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사주한 것으로 보이는 고발장이 판박이 수준으로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청부 고발 의혹이 점입가경에 접어들며 윤 전 총장은 코너에 몰렸다.
9월 8일 윤 전 총장은 직접 국회 소통관으로 나와 입장을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예고 없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신빙성 없는 괴문서를 가지고 국민을 혼돈에 빠뜨려선 안 된다”면서 “정치 공작을 하려면 잘 준비해서 제대로 하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정치공작을 하려면) 인터넷 매체 말고 우리 국민들이 다 아는 그런 메이저 언론이나 국민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를 겨냥해서도 “그 사람이 여의도판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폭탄을 던지고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오라”고 했다.
갑작스런 기자회견에서 나온 격앙된 발언은 다른 유탄이 돼 터졌다. 이날 발언으로 윤 전 총장은 ‘언론사 급나누기 논란’, ‘공익제보자 익명성 침해 논란’ 중심에 섰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뒤 점점 수렁에 빠져가는 모양새였다. 고발장을 당에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고발장 전달 여부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윤석열 캠프에 몸담고 있는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 9월 9일 “미래통합당 측에 자신이 고발장을 전달했다”고 인정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김웅-정점식-미래통합당 당무감사실’ 루트를 거쳐 실제 고발이 이뤄져 당 차원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정 의원은 “고발장 입수 경위는 모르겠다”고 해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9월 10일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김웅 의원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압수수색 영장엔 피의자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명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들은 김웅 의원실을 사수하는 ‘농성전’에 나섰다. 야당의 확고한 농성 의지에 공수처는 잠시 한발 물러섰다. 9월 13일 공수처는 2차 압수수색을 재집행했다. 2차 압수수색에선 김웅 의원 보좌진 PC가 수색 대상에서 제외됐다.
9월 10일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가 자신의 신분을 공개했다. 제보자는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을 지냈던 조성은 씨였다. JTBC 인터뷰를 통해 조 씨는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며 “김웅 의원이 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서울중앙지검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했다. 제보자 정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의혹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을 열면서 윤 전 총장은 더욱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조 씨의 정체 공개는 ‘양날의 검’이 됐다. 오히려 여야의 팽팽한 프레임 전쟁 빌미가 됐다. 8월 11일 조 씨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과 글이 발단이었다. 서울 모처 호텔에서 조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이 회자됐다. 조 씨가 뉴스버스에 ‘고발 사주 의혹’을 제보한 건 7월 21일이며,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9월 2일이었다. 제보 시점과 보도 시점 사이에 조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은 국민의힘 반격의 시발점이 됐다. 공수교대였다.
9월 12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두 사람(박지원-조성은)의 커넥션이 박지원 게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사건의 배경으로 강하게 의심된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거취표명을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윤석열 캠프 총괄실장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캠프는 박 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12일 SBS 인터뷰에서 조 씨의 발언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조 씨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날짜와 기간 때문에 내게 어떤 프레임 씌우기 아니면 공격을 하는데, 9월 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박지원 국정원장)이나 내가 원하고 배려 받았거나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었다”고 했다. 조 씨는 “이진동 기자(뉴스버스)가 ‘치자’고 결정을 했던 날짜라서 사고라고 표현했다”면서 “박지원 원장에게 이 건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러 해석이 나올 만한 발언이었다.
9월 13일 윤석열 캠프의 윤희석 대변인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조 씨 발언에 대해 “갑자기 자백을 한 건지 말이 헛나왔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훅’ 들어오니 해석을 해야 하는 우리도 당황스럽다”면서 “조 씨 말 그대로라면 정치공작을 공모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변인은 “그렇다면 뉴스버스 보도 이후 검찰·공수처·법무부 트리오가 완벽하고 신속하게 움직인 것도 설명이 된다”면서 “이제는 ‘제보 사주 의혹’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 8월 11일 박 원장과 조 씨의 만남에 또 다른 동석자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동석자가 홍준표 캠프 관계자라는 이야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들려왔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9월 13일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국정원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왜 잠자는 호랑이 꼬리를 밟느냐”고 했다. 박 원장은 “8월 11일엔 (조 씨와) 두 명이 만났다. (동석자로 거론되는 인사는) 알지도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대세론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캠프도 이번 논란에 참전했다. 이재명 캠프 대변인인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13일 논평을 통해 “전후 맥락도 따지지 않은 채 정치공작으로 몰아가는 건 어떻게든 본질을 가려보려는 얄팍한 대응”이라면서 “이번 의혹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검찰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 정당과 결탁해 고발을 사주했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발 사주 의혹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란 알을 낳으면서 여야 공방전은 격화하고 있다. 같은 사실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프레임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리느냐가 향후 대선 판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의혹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이 진보와 보수 진영 내부 지지층 결집에 적잖은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윤석열 캠프 내부에선 이번 논란이 오히려 지지율 반등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캠프 한 관계자는 “공수처와 검찰이 나서긴 했지만 어차피 대선 전까진 실체가 규명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후보들 간 공방만 계속될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여권이 때릴수록 지지율이 오르는 유형의 후보다. 더군다나, 여권이 조직적으로 이번 건을 다루려 했다는 정황이 나올 경우 윤 전 총장에겐 호재다. 여권이 보수 야권의 유력 후보를 핍박하고 있다는 식의 이미지는 선거 레이스에서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을 오가며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 전 기세싸움이라고 하기엔 여당과 제1야당이 아주 세게 붙었다”면서 “이번 프레임 전쟁에서 밀려나면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너무 빠르게 내주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힘 측의 실책은 명백하다”면서 “고발장이 당까지 흘러갔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에 고발 사주 의혹에서 먼저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이런 이슈로 전초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타이밍이 한 템포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선 후보가 윤 전 총장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이런 이슈가 부상했으면 대선 판세가 더욱 심하게 요동쳤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 경선 전에 스캔들이 터졌다. 스캔들의 파급력이 대선 본선까지 미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윤 전 총장이 아닌 다른 후보가 대선 후보로 결정되면 이 스캔들은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스캔들 대결 구도가 ‘고발 사주’와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여야는 내부 경선과 별도로 격렬한 정치공방을 치러야 한다. 경선 흥행과 별도로 이번 이슈가 20대 대선 초반 결정적인 승부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