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데 없으니 믿는 거지”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상금 456억 목숨 건 게임 속 인간다움 메시지 담아
‘오징어 게임’을 둘러싼 ‘N차 관람’ 역시 이어지는 모양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어서” 봤다면, 이후 숨은 의미를 찾는 각종 분석과 해석이 더해지며 다시 돌려보는 시청자들이 늘었다. 특히 무심코 듣고 지나쳤던 대사 속에 엄청난 복선과 주제 의식이 깔려 있음이 증명되며 다시보기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몸으로 때우시면 됩니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이 ‘오징어 게임’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아니다. 정식 게임에 참가하기 전 지하철에서 만난 남성(공유 분)이 제안하는 ‘딱지치기’가 첫 게임이다. 딱지치기에서 이기면 한판 당 10만 원을 준다고 하니, 돈이 궁한 성기훈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작 딱지치기에서 지면 줄 돈이 없는 성기훈에게 지하철남은 “몸으로 때우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뺨을 후려갈긴다. 이 한 마디에는 ‘오징어 게임’의 명확한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오징어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돈=몸’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게임 참가자들은 총 상금인 456억 원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건다. 돈과 몸을 맞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대형 돼지 저금통에 떨어지는 엄청난 돈뭉치를 보면서, 사람들은 ‘저 정도면 목숨을 걸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극단에 몰린 물질만능주의 현대 사회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게임의 주최자인 오일남(오영수 분)은 극 후반 성기훈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돈 없는 사람과 돈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 역시 돈을 매개로 한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대사다.
반면 스스로 게임에 참가하고도 죽음의 공포를 느낀 이들은 “우리가 빚을 졌지,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라고 외친다. 돈을 좇아 게임 판에 발을 들이고도, 정작 죽음이 두려워지자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간성을 꼬집는 대목이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오징어 게임’ 속 세상에는 사람의 가치를 돈보다 하찮게 여기는 풍조가 깔려 있다. 상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을 장기판의 말로 보는 기득권층, 시체에서 장기를 꺼내 파는 이들까지 모두가 돈 앞에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성기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으니깐 믿는 거지.” 이 한마디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의 폐부를 찌른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협동하며 어려움을 타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 배경에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협력이 결국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 정도인 셈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신념만 갖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오징어 게임’은 말한다.
성기훈은 끝까지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게임의 승패가 목숨으로 직결되는 상황 속에서도 소외된 오일남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 성기훈에게 오일남은 종국에 이렇게 묻는다.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결국 ‘오징어 게임’은 인간성이 피폐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곁에 있는 누군가를 믿는지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극 중 여성 캐릭터인 강새벽(정호연 분)과 지영(이유미 분)은 아주 독특한 짝꿍이다. 약육강식의 게임 속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공격받는 사회적 약자다. 게임 밖에서도 그들은 탈북자, 또 가정폭력의 희생자로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연대하고 그 안에는 퀴어 코드까지 버무려지며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직 북을 탈출하지 못한 가족을 살리기 위해 돈이 필요한 강새벽은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지영은 그런 강새벽에서 “이기게 해줄게. 무슨 수를 써서든”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영은 상상하기 힘든 선택을 통해 강새벽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면서 지영은 강새벽에게 말한다. “강새벽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세상을 살아오며, 지영에게 손내밀어 준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지영은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영은 처음으로 자신을 믿고 함께 해준 강새벽을 위해 모든 것을 걸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이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온기를 전한 이를 위해 누군가는 능히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숭고한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다.
오일남이 성기훈에게 윗옷을 건네며 “윗옷이 없으면 사람들이 자넬 우습게 볼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도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겉치레를 중시한다. 겉모습을 보고 상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오일남은 스스로 윗옷을 벗어 성기훈에게 건넨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 성기훈에 대한 최고의 배려이자 예우인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