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 독점’ 특약에 연이율 올리고 투자금 전환까지 했지만 약정 공시 안해…공시의무 없어 법적 문제 안돼
대장동 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이 2015년 설립됐다. 이어 민간사업자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선정, ‘화천대유자산관리’가 자산관리회사(AMC)를 맡게 됐다.
화천대유는 초기 사업비로 350억 원을 소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비는 투자자문사 킨앤파트너스와 부동산투자회사 엠에스비티로부터 차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2016년 화천대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킨앤파트너스로부터 총 291억 원을 대여했는데, 193억 7000만 원은 연 이자율 6.9%로, 97억 3000만 원은 연 이자율 13.2%에 설정했다. 엠에스비티는 연 이자율 6.9%로 60억 원을 화천대유에 빌려줬다.
그런데 이후 2017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화천대유는 대여금을 457억 원으로 늘리고 351억여 원에 대해서는 연 이자율 25%를, 106억 원은 연 이자율 13.2%를 적용했다. 엠에스비티의 경우 70억 원을 추가 투입하더니 차입금 130억 원을 투자금으로 전환했다. 킨앤파트너스도 2018년 9월 351억 원을 프로젝트 투자로 계약을 변경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계약이 아니라, 사업의 이익을 배당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2017년은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변경계획의 인가가 고시돼 사업이 안정화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에서 5~6%대 이자율로 대규모 자금을 차입할 수 있게 됐다. 실제 2018년 화천대유는 7000여 억 원의 자금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화천대유는 차입 1년여 만에 연 이자율을 대폭 올리고, 대여금을 투자금으로 전환하는 킨앤파트너스의 조건을 다 받아들였다. 킨앤파트너스는 화천대유 투자를 통해 최소 8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화천대유가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초 처음 차입 계약할 때부터 옵션이 들어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개발사업 초기는 위험요소가 많다. 그래서 시중은행이나 제1금융권에서는 300억~4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사금융이나 투자사 등을 찾는 것”이라며 “이들도 처음부터 투자로 계약을 하면 위험을 함께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처음에는 대여 형식으로 이자를 받다가 여러 옵션이나 조건을 걸어 놓는다. 화천대유 같은 시행사 입장에서는 돈을 가진 쪽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조건을 받아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화천대유와 킨앤파트너스가 초기 대여 계약을 맺으면서 연 이자율을 높이거나 투자로 전환할 수 있는 콜옵션을 걸었거나, 사업시행인가·분양 등 시점마다 조건이 변경되는 약정을 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양사 간의 이러한 콜옵션이나 약정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감사보고서에도 공시가 돼있지 않다. 공시 의무를 성실히 다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사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콜옵션은 향후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투자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천대유와 킨앤파트너스 사이에 대여금 계약 내용을 감사보고서에 공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도 “화천대유는 상장돼 자본시장법상 공시의무가 있는 기업이 아니다. 주주들 입장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화천대유 주주나 투자자는 다 관계자들 아니냐. 계약 내용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화천대유는 김만배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부동산업계 관계자 역시 양사가 계약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공시의무를 지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그는 “화천대유나 킨앤파트너스 입장에서는 옵션이나 이면계약이 있었다고 밝히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제기를 해도 그들이 ‘이면계약이 아니라, 나중에 요구를 해서 받아준 것이다’라고 하면 반박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킨앤파트너스와 엠에스비티는 2015년 화천대유에 351억 원을 빌려주면서 ‘화천대유는 해당 차입금 이외의 다른 차입금을 차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차입한다’는 특약을 달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신생회사와 ‘대여 독점’ 조건을 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본다. 킨앤파트너스가 대장동 개발사업의 사업 성공을 확신할 모종의 근거가 있었고, 이에 옵션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초기에 옵션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어도, 화천대유 입장에서는 뒤늦게 킨앤파트너스의 불합리한 조건을 다 받아들이면서까지 서둘러 정리하려고 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화천대유 측 설명을 보면 그들도 이처럼 수천억 원대의 개발수익이 나리라고 예상 못했던 것 같다. 이에 그들도 수익배분을 통해 서둘러 정리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익금이 넘쳐 감당이 안 되는데 킨앤파트너스와 옵션 계약 변경을 두고 분쟁을 일으켜 사회적 주목을 끌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화천대유 측에 킨앤파트너스와의 옵션 계약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킨앤파트너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화천대유 이성문 당시 대표와 박중수 당시 킨앤파트너스 대표 등 담당자들이 협의를 거쳐 2015년 5월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당시 화천대유는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 신분이고, 법적 지위는 보장되기 전이라 일단 금전소비대차계약을 한 것”이라며 “당시 계약에 투자 전환 약정이 담겨있었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옵션 계약이 있었다는 의미다.
킨앤파트너스와 화천대유 계약이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이유는 킨앤파트너스를 통해 화천대유에 400억 원을 빌려준 사람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2015년 킨앤파트너스에 ‘개인3’이라는 익명으로 10% 금리에 400억 원을 빌려줬다. 킨앤파트너스는 화천대유에 빌려준 돈을 최 이사장에게 차입한 돈으로 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최기원 이사장이 화천대유의 ‘전주’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 국감에서 최기원 이사장이 ‘화천대유’에 자금을 댄 사실을 거론하며 “최순실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우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사면에 대한 대가로 들어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기원 이사장 측은 화천대유 투자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기원 이사장은 박중수 전 킨앤파트너스 대표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돈을 맡겼다. 이후 최 이사장은 유망한 투자처라고 화천대유에 투자한 사실만 전해 들었을 뿐, 세부 내용이나 그 사업의 관련 인물이나 내막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수익 역시 “최 이사장은 빌려준 400억 원에 대한 10% 금리만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10월 13일 대한상의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장동이 무엇인지, 여동생이 투자를 했는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을 저는 추석에 알게 됐다”며 “저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문에 나온 정도로만 안다”고 밝혔다. 이어 “여동생(최 이사장) 나이가 50대 후반이니 스스로 하는 것이지 제가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의 투자가 SK그룹이나 최태원 회장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