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3사 각자대표 체제로, 현대캐피탈서 퇴진…카드·커머셜 장악력 높이는 모양새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 내부에서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자대표 체제일 뿐 정태영 부회장의 입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평가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난 9월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대표직마저 사임하자 정 부회장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태영 부회장과 정명이 사장 부부의 금융 계열분리 전망에도 온도차가 발생했다. 기존에는 정태영 부회장과 정명이 사장 부부가 금융 3사를 가지고 계열분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경영에서 물러나자 정 부회장 부부가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2개사만으로 독립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강해졌다.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정태영 부회장과 정명이 사장의 영향력이 축소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만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말했다.
더욱이 현대캐피탈은 정태영 부회장이 물러난 후 그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최근 현대캐피탈은 현대카드와 겸직을 맡던 임원을 비롯해 총 29명을 정리했다. 이들의 빈자리는 대부분 채우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팀장급 15명가량을 팀원으로 강등할 정도로 강도 높은 조직 개편이었다. 정태영 부회장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인사 단행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캐피탈은 사무실을 현재의 여의도 사옥에서 향후 강남으로 이전할 것이란 말까지 돌고 있다. 현대캐피탈을 정태영 부회장에게서 완전히 떼어내겠다는 의미다.
현대캐피탈 경영에서 정태영 부회장만 손을 뗀 것이 아니다. 부인 정명이 사장도 현대캐피탈 브랜드 부문장직을 내려놓았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현대카드·현대커머셜 계열분리설'에도 물음표가 찍힌다. 다만 현대캐피탈에서 정태영 부회장 부부는 직간접적으로 확보한 지분이 없었지만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에서는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지배력이 직간접적으로 배어 있다.
현재 정태영 부회장 부부는 금융 3사 가운데 현대커머셜 지분만 가지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과 정명이 사장은 현대커머셜 지분을 각각 12.5%, 25%, 총 37.5%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현대커머셜 지분과 같다. 나머지 지분 25%는 사모펀드 어피니티의 특수목적 회사 Centurion Resources Investment Limited가 가지고 있다. 해당 지분의 방향성에 따라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현대커머셜에 대한 지배력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에 대한 지배력은 현대커머셜을 통해 간접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현대커머셜은 지난 8월 어피니티 측으로부터 지분을 추가 매입해 현대카드 지분율을 28.54%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많이 낮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의 현대카드의 지분율은 각각 36.96%, 11.48%, 총 48.44%다. 다만 같은 시기 어피니티의 잔여 지분 20%를 모두 매입한 푸본그룹이 정태영 부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고 있다. 푸본과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지분을 합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분을 합한 것보다 0.1%가량 많다.
정태영 부회장 부부는 일단 직접 지분이 있는 현대커머셜에서 장악력을 높이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경영에서 손을 뗀 정명이 사장이 지난 9월 30일 현대커머셜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눈길은 자연스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쏠린다. 정명이 사장의 남동생인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10월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 금융 3사에 큰 변화는 없었다.
정태영 부회장 부부가 현대차그룹 금융 3사를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흔들린 것은 정태영 부회장이 금융 3사 단독 대표체제가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한 후부터다. 이는 정 부회장의 장인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 등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지난 2월 이후 일이다.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조직 개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들의 계열분리와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독립 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태영 부회장 부부의 계열분리가 이뤄질지, 이뤄진다면 원만하게 성사될지 주목된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