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 그럴 사람 아닌데…”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숨진 김 씨의 집 전경. 김 씨는 평택 일대 건물 20채 등을 소유한 300억대 자산가였다. |
17일 오전 9시 8분경 아들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김 씨는 손과 발이 청테이프로 묶이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양 씨는 대들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현장 조사결과 김 씨 살해에 골프채와 삽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숨진 양 씨 주변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A4용지 한 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양 씨가 남편 사망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에 가담한 장 씨 일행은 경찰조사에서 찜질방에 있던 김 씨를 차에 태워 피해자 집으로 데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살해하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장 씨는 양 씨의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양 씨로부터 500만 원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아들 김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평소 어머니가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평택경찰서 유보국 형사과장은 19일 기자와 만나 “김 씨 부부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며 “피해자의 재산이 300억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 등에 미뤄 정확한 범행동기와 공범이 더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의 키를 쥔 양 씨가 이미 고인이 된 상태라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는 숨진 김 씨의 동네 이웃들을 만났다. 그 결과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숨진 김 씨는 평택시 일대에 건물 20채와 임야를 소유한 평택에서 소문난 자산가였다. 300억대의 자산가인 김 씨가 왜 10여 일 동안 찜질방 생활을 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양 씨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굳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왜 집으로 데려와 살해를 했는지도 미스터리였다.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보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기자가 만난 이웃들은 김 씨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얘기를 전했다. 평택의 미군부대에서 반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김 씨는 폭력 남편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소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반면 양 씨에 대해서는 이웃들 모두 ‘기가 상당히 센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말에 대해선 이웃들은 ‘남편을 때렸으면 때렸지 맞을 사람은 아닌데…’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웃들은 일례로 양 씨가 살던 고급빌라 공사에 관한 얘기를 전했다. 마루 공사를 하던 중 양 씨는 마음에 안든다며 계속 재공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 마루공사를 담당했던 업체의 본사에서 사람이 나와 확인까지 했지만 공사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 씨는 계속 재공사를 요구했을 정도로 강단 있는 여자였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김 씨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가 나빠졌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 씨가 지난해 여름부터 평택시에서 사는 내연녀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부인 양 씨가 1년여 동안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상당히 힘들어 했으며, 그 사건 이후 김 씨는 아내와 아들들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면목이 없었던 김 씨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찜질방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김 씨가 찜질방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 양 씨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는 등 김 씨의 출입을 막아 김 씨는 사실상 쫓겨난 형국이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이제 김 씨와 양 씨 모두 고인이 된 상태라 두 사람 사이의 논란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문제는 사건의 진실이다. 양 씨가 실제로 남편인 김 씨를 죽였는지와 양 씨의 사인은 자살이 맞는지, 그리고 장 씨 등 제3자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의 의문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경찰도 현재 이 부분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훈철 인턴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