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위해 운동과 초코파이로 10kg 벌크업!…“베드신의 베이스 사랑 아닌 사람, 슬프고도 아름다워”
“운동하고 몸 만드는 것, 액션 신을 찍는 것 다 너무 힘들었죠(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의지 아닌 의지를 했던 것 같아요. 또 마약수사대와 동천파에서 각각 선배님들이 모두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엄청난 힘이 됐고요. 사실 애초에 액션이라는 어떤 한계성에 도달한 채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부담감은 좀 덜어내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할 땐 또 즐겁게 했었죠(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에서 한소희는 국내 최대 마약 조직 동천파 간부였던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조직과 인창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를 오가는 ‘언더 커버’ 윤지우 겸 오혜진을 맡았다. 첫 누아르, 그리고 첫 액션 연기 도전이었지만 처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장르에 녹아든 모습을 보여줘 작품과는 별개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조직원이자 마약수사대의 일원으로서 온통 남자들 사이에 있다 보니 말보다는 주먹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신이 많았다. 아무리 합을 맞춘다고 해도 조금만 실수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게 액션 영화 촬영 현장이다. 이미 각오했던 그 이상으로 현장에 임해야 했다는 게 한소희의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 평소 44kg를 유지했던 몸무게를 10kg 가까이 증량하며 액션을 버틸 수 있는 몸만들기에 주력했다.
“사실 초코파이만 있으면 5kg는 그냥 찌울 수 있습니다(웃음). 운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배가 자주 고팠거든요. 운동하느라 지친 와중에 뭔가 활력이 되는 순간은 역시 점심시간, 저녁시간, 간식시간(웃음)! 이렇다 보니까 근육이 있는 상태에서 먹은 만큼 벌크업이 돼서 나중에 보니 10kg가 늘어 있더라고요. 계획해서 살을 찌웠다기보단 (캐릭터) 준비 과정에서 그저 잘 먹고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아요(웃음).”
여주인공 원톱인 누아르 안에서 한소희는 남성 캐릭터들과 일견 다양해 보이지만, 본질은 하나인 관계성을 형성해 나간다. 오직 아버지의 죽음 아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윤지우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천파의 보스인 최무진(박희순 분), 인창경찰청 마약수사대의 직속 선배인 전필도(안보현 분), 이 두 캐릭터 모두에게서 아버지를 연상하게 된다. 특히 최무진과는 후반부로 갈수록 애정과 증오, 동정과 혐오가 뒤섞인 묘한 감정선을 형성하면서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스토리 라인에 탄력을 더하기도 했다.
“둘의 관계를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사실 무진은 초반엔 그냥 ‘힘이 센 아빠 친구’였는데(웃음), 후반부로 가면 또 다른 아버지가 돼요. 어떻게 보면 길바닥에 나앉을 뻔한 지우를 데려다 이렇게 강인한 사람으로 키워줬으니까요. 한편으론 무진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지우를 보며 ‘누구 하나가 죽어야지만 끝나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관계라고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죄책감이 주가 됐을 것 같기도 하고요.”
최무진과의 관계성이 인과에 따라 흘러간 반면 전필도와의 감정선은 그야말로 ‘급발진’으로 눈길을 끌었다. 납득할 만한 감정의 빌드업이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이뤄져 뜬금없는 둘의 베드신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자 김진민 감독은 “지우의 멈출 수 없는 마음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게,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결과였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실 촬영하고 있는 중간에 (베드신) 대본을 받게 돼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독님도 그렇고, 보현 오빠도 그렇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생각은, 사실 필도와의 베드신은 이 베이스가 사랑이 아니고 지우가 유일하게 사람다워 보일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봤거든요. 또 필도의 대사를 보면 지우의 아빠를 오마주하는 대사들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지우가 이 모든 아픔을 내가 짊어져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서 이뤄낼 수 있는 하나의 모먼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신이 되게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촬영 중간에 갑작스럽게 들어간 베드신이 배우들에겐 그렇게까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 덕이 커 보였다. ‘마이 네임’ 출연진의 SNS(소셜미디어)에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동네 친구처럼 서로를 대하는 글과 사진들이 올라와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전작인 ‘부부의 세계’로 만났던 이학주(정태주 역)는 물론이고 ‘마이 네임’에서 숙적처럼 대립한 장률(도강재 역), 안보현까지 모두 비슷한 나이 또래여서 더욱 쉽게 친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출연진과의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물었을 때도 이들의 이야기가 제일 먼저 언급됐다.
“후반부에 학주 오빠가 제 손에 죽는데, 그런 뒤에 관에 들어가 있는 신이 나와요. 오빠가 어깨가 정말 넓거든요. 그런데 관이 좁아서 어깨가 이렇게(웅크리며) 껴 있는 거예요(웃음). 그 신의 캡처 짤이 저희 ‘마이 네임’ 단톡방에서 굉장한 놀림거리가 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주 오빠, 미안해(웃음). 또 박희순 선배님도 그렇고 보현 오빠도 그렇고 다들 정말 좋은 오빠들이고 선배님들이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어떤 색안경도 끼지 않고 도와주셔서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현장이었지만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한소희는 자신을 한 번 더 극한으로 내몰았다. 액션을 모두 소화해 내다가 몸에 과부하가 걸려 실신까지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몸이 지친 게 아니라 마음이 지친 것이라고 착각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좀 있었다”라며 멋쩍게 웃어넘기면서도 이제는 더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을 안심시켰다.
“목표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지금 제 목표예요. 어떻게 보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1년의 계획보단 내일의 목표를 세우다 보니까 목표 이후의 시간들을 제가 보다 이롭게 활용을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목표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좀 더 꽉 차게,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보내려고 무던히 노력 중입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