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 없이도 살만한 68세 선녀님의 삶과 꿈이 맞닿는 순간…늦은 게 어딨어, 지금이 한창인데

나무꾼 없이 하늘 아래 세상을 홀로 살아야 하는 선녀 할머니의 삶은 슬픔에 몸을 온전히 맡길 여유도 없이 하루 24시간이 꽉 차도록 바쁘다. 커다란 솥에 팔팔 끓인 뒤 소담하게 담은 두부를 먹여 새끼를 낳은 소의 산후조리를 도와줘야 하고, 가지가 휠 정도로 가득 맺힌 감을 한 소쿠리 가득 따서 알알이 엮어낸 곶감도 처마마다 걸어놔야 한다.
들판에 풀어놓은 숫염소 한 마리가 윗집 할아버지네 마당까지 들어간 것을 붙잡아 오고, 비싼 콜택시를 불러 시내 한글학교까지 나갔다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고 나면 그때서야 숨 돌릴 틈이 아주 작게나마 생길 뿐이다. 그 틈바구니에서조차도 선생님이 내주신 덧셈뺄셈 숙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선녀 할머니의 하루는 저물어 버린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산 하나만 넘어 봤을 뿐, 열여덟 살에 시집와 시내를 제외하면 이 마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선녀 할머니는 산골 처녀였다가 한 남자의 아내였고, 또 아이들의 엄마였기도 했다. 그렇게 70년 가까이 보내고 나니 임선녀로서의 온전한 삶을 챙겨본 적이 없었음을 막연하게 깨닫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꿈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시간만 무정하게 흘러갔다.

축대 역할을 할 커다란 돌멩이들을 쌓아 올리고, 망치질부터 시멘트로 바닥을 다지는 일까지 어디 하나 선녀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생전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해 힘을 쏟게 된 선녀 할머니의 손놀림과 발걸음에는 힘이 꽉 들어 차 있다. 당신 몸보다 커다란 포대를 등에 걸머지고 옮기면서도 지친 기색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선녀 할머니에게 있어 새 집을 짓는 일은 바쁘기만 했던 하루의 또 다른 일과가 아닌 당신의 꿈을 향한 첫 걸음마인 셈이다. '그래도 해야지'가 아닌 '그러니까 해야지'가 주는 힘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소박한 일상에 맞춰져 있던 이야기의 초점이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춰가는 집과 맞물리면서 관객들은 그 집이 완성되는 순간 선녀 할머니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너무 늦었다고, 그럴 시간과 돈이 어디 있냐고, 이젠 좀 쉬엄쉬엄 살라고. 내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언제든 내 삶과 내 꿈을 겹쳐두어도 괜찮다는 걸 선녀 할머니가 몸소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끝난 뒤 사진으로 등장하는 완성된 집 앞에 선 할머니의 얼굴엔 그런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담겨 있으니, 끝났다고 해서 빨리 자리를 뜨지말고 스태프롤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사람이 너무 좋아서 사람의 이야기로 호흡하고 싶었다는 원 감독은 임선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하늘과 맞닿은 듯이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외딴 마을에 임선녀 할머니는 혼자 소들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에게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그 에너지가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엔딩 부분에 임선녀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을 통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한 번씩 응원하고 싶다. 나를 응원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작동하게 만드는 영화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제작 의도처럼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망설임 없이 꿈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선녀 할머니의 일상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사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도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이란 몇 년을 헤매더라도 꿈을 찾는 여정인 것은 아닐까. 조금 느리더라도, 남보다 작더라도 내 곁의 희망을 잡는 것이 꿈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너무 늦은 일은 없을 터다.
“꿈이요,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한없이 무해한 강원도 산골의 그림 같은 풍경과 함께 한번쯤은 이렇게 묵묵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숨을 돌려도 괜찮지 않을까. 언제가 됐든 반드시 꿈을 찾을 당신의 삶을 응원하면서. 83분, 전체 관람가. 10월 20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