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례 신고에도 조치 없어…다음주, 소송 예고
대한신경전신의학회 및 사단법인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은 26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정신건강복지법과 매뉴얼에 따른 기본적 조치들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사법부만이라도 이러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하게 선언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다음주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사건의 주범인 안인득(44)은 2019년 4월 17일 오전 4시 25분쯤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쳐 총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사건은 안인득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실, 2010년에도 피해망상으로 행인에게 칼을 휘둘러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2016년부터 치료가 중단된 사실, 사건 이전부터 주민들이 안인득을 8번이나 경찰에 신고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논란을 낳았다. 실제로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안인득을 8차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가족을 대리하는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치유)도 기자회견에서 "안인득은 2010년 공주치료감호소에 입소할 당시 정신질환(조현병) 판정을 받았으나 2016년 7월 이후 치료가 중단돼 상당기간 방치됐다“고 말했다.
또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정신건강복지법과 매뉴얼에 따른 기본적 조치들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접수된 112 신고만 8회로, 경찰이 정신질환자임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며 “이번 청구 사건의 쟁점은 경찰 부작위 위법성과 (사건의) 상당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오 변호사는 “안인득의 형은 이 사건 직전까지도 안인득의 문제를 홀로 떠안고 검찰청 민원실, 시청, 주민센터를 전전하며 비자의 입원이 가능한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를 제대로 안내해주는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진주방화살인 사건 예방에 우리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안인득 사건을 심리한 1심은 “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비극이 일어난 것에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치되는 환자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결국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고마는 현실”이라며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담을 가족에게 돌리고, 사회시스템이 없을 때 피해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 때로는 아무 관련 없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국가의 책임이 좀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의 법원 결정을 기대하겠다”고 의견을 냈다.
한편, 유가족 A 씨는 “나는 2년 반이 지나도록 그리운 나의 어머니와 딸을 만나지 못했다”며 “경찰이 주민들이 신고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나에게 한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치료 방법을 알려줬다면 나는 그를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며 “경찰이 눈 앞에서 위험을 보고도 외면하고 법대로 하지 않아 가족들이 죽어갔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위험 앞에서 국민을 버려둔 채 가장 먼저 도망갔다. 다시는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가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 책임을 묻고자 이번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전했다.
오 변호사와 A씨 등은 이 사건 소송을 다음 주 내로 법원에 제기할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