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세트장 낀 2·3코스 걸으며 백두대간·다랑이논 조망…경상·전라 사투리에 마을 풍경, 민박집 시골밥상도 굿
#해동분소 지어진 남원 인월세트장
드라마 ‘지리산’은 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고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드라마로 드라마 상에서 주인공들은 지리산 국립공원 레인저로 등장한다. 16부작인 드라마 대부분이 남원시 인월세트장에서 촬영됐다고 알려졌다. 인월세트장은 인월면 흥부골 자연휴양림 내 1만 5000여㎡ 부지에 만들어졌는데 산 외에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는 해동분소와 비담대피소 등이 지어졌다.
인월세트장이 위치한 남원시는 드라마 ‘지리산’의 세트장과 촬영지 등을 중심으로 관광 상품과 프로그램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당장 11월 중순께부터 인월세트장을 둘러보는 관광 택시와 투어 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원시는 세트장 등의 관광자원 활용을 위해 드라마 제작 당시 20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다.
인월세트장을 중심으로 레인저 테마파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레인저의 구조 활동을 체험해보는 각종 장비와 시설이 갖춰지고 숙박시설도 들어설 계획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분소에도 드라마 촬영 소품과 장비, 촬영 모습 등을 볼 수 있는 ‘드라마 지리산 기획전시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나 배우가 좋아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이라도 지리산 아래까지 와서 지리산을 느껴보지 않고 돌아가기는 영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지리산 산행이 쉬운 것도 아니다. 등산을 위해선 적절한 장비와 체력이 필요하다. 지리산 등산은 부담스럽지만 지리산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방법이 있다. 바로 지리산둘레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2코스, 황금들판 걸으며 백두대간 조망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3개의 도를 아우르며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둘레길은 가볍게 뒷산 오르듯, 산책하듯 걸어볼 수 있는 길이다.
2008년에 처음 조성되기 시작한 지리산둘레길은 5개의 시군과 20개 읍면, 100여 개 마을을 잇고 있다. 남원시,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구례군을 통과하는 295km의 둘레길에는 산길만 있지 않고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을 두루 지난다. 21개 코스의 도보길에서 숲의 기운과 시골의 정취를 두루 누릴 수 있다. 코스 별로 10~20km로 이루어져 있고 코스에 따라 4~8시간 정도 걸린다.
지리산둘레길은 흔히 제주올레길과도 비교되곤 하는데 해안을 따라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올레길과는 달리 둘레길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리산 둘레를 광범위하게 휘도는 산간 트레일이다. 숲길을 걸을 때는 종종 확 트인 시야가 나타나 드라마 속에서처럼 지리산 능선을 마주할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의 21개 코스 가운데 드라마 ‘지리산’의 주 촬영무대가 됐던 인월세트장을 끼고 있는 2코스와 3코스를 소개한다.
2코스 운봉-인월 구간은 10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비교적 쉬운 코스로, 산길보다는 마을길을 주로 걷게 된다. 확 트인 들녘을 낀 평지가 주를 이루는데 옆으로 천이 흐르고 멀리는 산의 능선이 꼬리를 문다. 짱짱한 산들을 바라보면서 내내 들녘을 걷는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편히 걷기만 하면 된다. 한여름 뙤약볕이라면 힘들 수도 있지만 가을이라면 불편할 것이 없이 황금빛 들판을 보며 걷기 좋다.
어느 시골에나 있음직한 길이지만 해발 400~500m의 운봉고원을 걷는 길이라 청명한 기분도 느껴진다. 드라마의 인월세트장이 지어진 흥부골자연휴양림도 지난다. 길 중간쯤에선 ‘국악의 성지’와 ‘송흥록 생가’ 등 우리 소리문화의 현장도 둘러볼 수도 있다.
2코스의 백미는 신기마을에서 비전마을까지의 길로 옆으로는 람천을 끼고 너른 들판을 걸으며 오른쪽으로 바래봉과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왼쪽으로 고남산과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옥계호에서 흥부골자연휴양림까지 잣나무 숲길도 전망을 즐기며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운치 있는 구간이다.
운봉에서 인월 쪽으로 향하는 순방향으로 걸어야 양쪽에 포진한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 등 주변의 산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보통 교통편이 편리한 인월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부터 2코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산을 등지고 걷게 된다.
#3코스, 경상도 전라도 넘나드는 다랑이논
3코스를 지리산둘레길의 백미로 꼽는 사람이 많다. 지리산의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3코스는 인월-금계 구간으로 2코스의 2배인 19km다. 걷는 시간도 2배인 8~9시간이나 걸린다. 하지만 그만큼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맛을 두루 누릴 수 있는 길이다. 3코스는 등구재 고개를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풍습과 사투리를 접할 수 있는 코스다. 겹겹이 펼쳐진 다랑이논도 이 구간의 명품 스팟으로 꼽힌다.
중간중간 스치는 마을의 풍경을 무심코 지나치기 아쉽다면 3코스 중간 마을 민박에서 하루 자면서 시간을 두고 10km씩 이틀에 나누어 걸어도 좋다. 3코스 중간의 장항마을에는 당산 소나무가 있다. 400살이나 먹은 소나무는 드라마 ‘지리산’에도 얼핏 출연한다. 또 황매암에서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계곡 수성대는 물이 맑아 마을에서 식수로 사용할 정도다. 쉬어가기 좋다.
둘레길 곳곳에는 이정표가 있다. 빨간색 화살표는 시계방향을, 검은색 화살표는 반시계방향을 가리킨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종종 쉼터도 만난다. 쉼터에서 라면, 막걸리, 파전, 도토리묵, 두부김치, 각종 계절나물 등을 맛보며 요기할 수 있다.
둘레길에는 마을 민박을 비롯해 펜션과 자연휴양림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시골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푸짐한 시골밥상까지 먹어볼 수 있는 마을 민박에 머무는 것을 권한다. 지리산둘레길 2코스와 3코스 사이에 위치한 월평마을에 민박집이 많아 묵어가기 좋다.
2, 3코스 두 구간의 시작과 끝점에 있는 마을이라 어느 방향으로도 걷기를 시작할 수 있어 편하다. 서울에서 바로 오가는 버스도 있는 인월시외버스터미널은 마을과 5분 거리에 있고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와 인월장도 마을과 가까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마지막 숫자가 3, 8일에 열리는 인월장도 구경해 볼 만하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