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냐 명예훼손이냐
▲ 지난해 담임목사의 여성도 성추행 파문으로 곤욕을 치렀던 삼일교회. 이번에는 사건을 폭로한 성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전 아무개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해 여름, 한 공중파 방송의 취재과정에서였다. 전 목사는 2009년 11월 중순경 자신의 집무실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일부 기독교계와 교인들만 알고 있던 이 사건은 당회 측의 형식적인 징계로 묻히는 듯했으나 일부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 측의 안이한 태도와 관련, 비난의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징계 및 설교중지 기간을 ‘안식년’으로 교묘히 위장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일부 교인은 “교회 측이 전 목사를 둘러싼 의혹이나 징계사실을 주보 등에 알리지 않았다. 당시 전 목사는 이른바 ‘저수지 사역’이라는 미자립 교회 후원 프로젝트를 위해 안식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성추문 사건 때문이라는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음성적으로만 전해졌다”고 전했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이 사건은 지난해 가을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인해 기독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전 목사가 기독교계를 끌어나갈 핵심리더이자 젊은 목회자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수많은 성도들에게 추앙받은 스타목사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핵심은 전 목사의 행위가 단순안마였는지, 아니면 성적 의미가 담긴 행위였는지 여부였다. 사건 이후 교회 안팎에서는 피해를 당했다는 성도가 ‘이단’이라는 루머와 함께 단순 안마 수준의 스킨십이 성추행으로 와전됐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성도들 중에는 전 목사의 ‘결백’을 강조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일관하는 교회 측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11월 1일 전 목사는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와 함께 사임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12월 19일 당회는 전 목사에 대한 사임을 공식 결의했고, 이로써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2월 15일 삼일교회가 교회 성도인 A 씨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건은 재점화됐다. A 씨가 전 목사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 등에 글을 올린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A 씨는 전 목사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해명과 회개를 촉구해온 인물이다.
이에 교회 측은 A 씨가 삼일교회를 비방할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삼일교회와 장로를 포함한 교인 27명의 이름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심지어 교회 측은 2억 6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도 함께 제기했다.
이번 고소를 주도한 J 변호사는 소송 배경에 대해 “A 씨가 전 목사 사건을 폭로했기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A 씨가 ‘삼일교회 성도들이 이 사건의 공범이고 장로들과 교역자들이 전 목사를 도와 전 목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했다’라는 허위사실을 자신의 블로그를 포함해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퍼뜨렸기 때문에 소를 제기한 것이다. 전 목사 사임 확정 후 명예훼손성 글들에 대해 삭제를 부탁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고소할테면 해보라는 식의 트위터 답변뿐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교회에 몸담았던 성도를 상대로 한 삼일교회의 소송을 두고 세간의 시선은 곱지않다. 대형교회가 교회의 치부를 들춰낸 힘없는 성도에게 괘씸죄를 물어 ‘치사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소송을 두고는 성 도들 간에도 찬반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성도는 “잘잘못을 떠나 젊은이에게 3억 원 가까운 거액소송을 거는 것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면 “A 씨로 인해 교회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물론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명예훼손 및 상처를 입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고소는 교회 측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소송으로 인해 교회가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실제로 한 성도는 “교회가 100% 승소한다고 해도 전 목사와 교회, 피해자들의 치부를 낱낱이 세상에 까발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한 성도는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J 변호사에게 “교회의 대표기구인 당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 개인(J 변호사 지칭)이 교회의 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를 제기 할 일이라면 당회나 혹은 당회가 위임하는 기구에서 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또 교회 내부 문제를 법정에까지 들고 가야 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J 변호사는 “교회의 위임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법률전문가이다 보니 교회 측에 적극 건의를 했고, 교회에서 결정해 진행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J 변호사는 특히 입막음을 위해 거액의 소송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비난에 대해서는 “A 씨는 이미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는데 어떤 입막음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교회 측의 강경 입장에 대해 피고소인인 A 씨는 피소 이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의견을 가감없이 밝히며 치열한 법정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A 씨는 “대형교회가 돈과 교회권력, 법을 앞세워 신도 하나쯤 손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다른 대형교회들에게도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며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