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을 ‘감’ 사촌 줄까 말까
SK그룹은 이번 ‘일반 지주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 허용’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처리에 큰 기대를 걸어왔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SK증권 지분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한 SK는 오는 6월까지 지주회사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SK증권의 최대주주는 지분 22.71%를 보유한 SK네트웍스이며 SKC도 SK증권 지분 7.73%를 갖고 있다. ‘SK㈜→SK네트웍스·SKC→SK증권’ 형태의 현재 지배구조로는 현행 지주사법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런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4월 국회 처리가 무산되면서 7월 이전에 개정안이 시행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개정안 시행이 7월 이후로 미뤄질 경우 SK그룹은 SK증권 지분을 매각하거나 지주회사제 요건 충족 불이행에 따른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재계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직접 SK네트웍스로부터 SK증권 지분을 사들여 대주주에 오를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지난 수년간 최 회장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거액을 마련해오면서 최 회장의 SK증권 지분 매입설이 더욱 힘을 얻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07년 978억 원어치 SK케미칼 주식 전량(보통주) 처분을 시작으로, 2008년 SK건설 주식(시가 197억 원) 처분, 2009년 920억 원어치 SK㈜ 주식을 처분하며 실탄을 끌어 모았다. 지난해 9월엔 본인 명의 SK C&C 주식 2225만 주(지분율 44.5%) 중 401만 696주(8.0%)를 담보로 2000억 원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지난 4년 동안 자산 처분과 대출 등으로 4000억 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최 회장이 선물투자로 1000억 원 손실을 봤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재테크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년간 모은 4000억 원 중 1000억 원을 빼더라도 3000억 원이 남지만 이 돈이 고스란히 남아있는지조차 불투명하다. 최 회장의 선물투자 과정에서의 차명계좌 사용 여부 등이 수사당국의 주목을 받으면서 최 회장이 여러 눈치 보지 않고 SK증권 지분 매입을 위한 거액 베팅에 나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최 회장이 SK증권을 사촌형제의 계열분리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최 회장의 그룹 총수직 승계 이후로 최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과 그의 친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줄곧 낳아왔다. 현재 SK케미칼 최대주주인 최창원 부회장은 독립 여건을 갖춘 반면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4%에 불과해 SK㈜가 보유한 SKC 지분 42.5%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실패를 계기로 최신원 회장이 SK증권에 눈독을 들인다 하더라도 SK증권이 최신원 회장의 품에 안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증권 지분 22.71%(7268만 4750주) 전량을 사들이려면 약 1486억 원이 필요하다(4월 28일 SK증권 종가 2045원 기준). 이는 최신원 회장 명의 SKC 지분 시가총액 793억 원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4월 28일 SKC 종가 6만 4300원 기준).
일각에선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과 SK증권의 ‘궁합’을 따져보기도 한다. 지난 2007년 SK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당시 SK케미칼은 그룹 지주회사제 범위에서 제외됐다.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29일 SK㈜가 보유하고 있던 SK가스 지분 392만 8537주(지분율 45.53%) 전량을 1841억 원에 사들였다. 지난 4월 18일엔 최창원 부회장이 SK가스 주식 52만 8000주(지분율 6.12%)를 사들여 개인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렇다 보니 최창원 부회장 측이 SK증권마저 사들여 계열분리에 대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 부회장이 SK가스 지분 매입을 위해 SK케미칼 주식 77만 주를 담보로 은행에서 220억 원을 대출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가에선 최 부회장의 지분 매입이 SK케미칼-SK가스 합병을 위한 전초작업이란 해석이 등장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2738억 원을 벌어들인 SK케미칼에게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증권 지분 전량 인수는 수치상 버거워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재계에선 “최창원 부회장이 SK증권보다 SK건설 지분 늘리기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SK건설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 부회장이 SK건설 경영을 주관하고 있지만 SK건설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 계열인 SK㈜다(지분율 40%). SK케미칼은 SK건설 지분 25.4%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 부회장의 SK건설 지분율은 9.6%다.
하지만 SK케미칼이 SK증권 인수를 통한 금융업 장착으로 소그룹화 발판을 다지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