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세계각국 ‘종’ 1만여개 모은 수집가
- 이재태 교수"대구 관광명소 등에 박물관 만들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어"
[대구=일요신문] "사실 '종(鐘)'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대부분 왜 모으냐, 어느 것이 제일 비싸냐? 이런 것들을 주로 물어봐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이재태 경북대병원 핵의학과 교수의 '종(鐘)' 사랑은 유별나다. 이 교수의 경북대병원 연구실에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서린 종들이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서랍과 수납장에도 열어보면 온통 종(鐘)이다. 병원은 물론 자택에도 종(鐘)이 가득차 있다고 한다. 그가 30년간 모은 종(鐘)은 무려 1만여 개.
"어릴 적부터 무언가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우표나 코인을 수집하곤 했죠. 그러다가 미국에서 거주할 때 집 앞에서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플리마켓에서 종(鐘)을 봤어요. 미국에는 가정마다 장식 종(鐘)이 매우 많았거든요. 그때부터 종(鐘)을 모으기 시작한거 같아요."
그의 컬렉션에는 세계 각국의 역사적 인물, 문학작품의 주인공, 동물 등 다양 한 형상의 종(鐘)들이 있다. 일반적인 금속부터 유리, 나무, 흙, 은, 상아, 합금, 자기, 크리스탈 등 희귀한 재료의 종들도 많다. 공습을 피하거나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알림 종(鐘), 망자를 기리기 위해 장례식 때 나눠준 종(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하려고 대포를 녹여 만든 종(鐘)도 있다.
그는 단순히 종(鐘)만 모으는 것은 아니다. 종(鐘)의 미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당시 종(鐘)에 대한 유래와 역사,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 정치, 경제적인 배경마저 꽤 뚫는다.
"종(鐘)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청아한 소리뿐 아니라 한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인류학적, 미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인물 종, 신화나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 시대상, 국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종(鐘)도 있죠. 워낭도 종(鐘)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금속이 없는 시절에는 대포껍질을 잘라서 만들기도 했죠."
35살부터 시작한 종(鐘)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초기에는 여행이나 학회 참석으로 해외에 나갈 때마다 기념품 종(鐘)을 샀다고 한다. 미국 종(鐘) 수집가 협회에 가입해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희귀하거나 예술적인 조형미를 갖춘 종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베이, 아마존 같은 해외 경매사이트를 이용한다고 한다.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에 다시 혼을 입히는 것이라고 하죠. 저마다 이야기를 지닌 종(鐘)이 제게는 더없이 정겨운 친구이고요. 언젠가는 대구의 관광명소나 근대골목투어 같은 곳에 박물관을 만들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한편 이재태 교수는 1957년 대구에서 출생해 경북고를 57회로 졸업했다. 경북대 의대에 진학해 핵의학교실 교수, 병원기획조정실장, 박물관장, 진료처장을 거쳤다. 미 필라델피아 심장연구소 연구원, 미국국립보건원 연구원을 지냈다. 2개의 국책연구단을 이끌며 SCI급 논문 150여 편을 포함, 모두 35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 핵의학 학회지 우수논문상을 수상했고 경북대 원암학술상도 받았다. 지난 32년간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자로서 훌륭한 업적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대한핵의학회 이사, 위원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핵의학의 발전 및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해 2021년 한국핵의학청봉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