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 “날 침대로 끌고가” 감독 “혼자 자는데 들어와”…강간치상 DNA 등 증거 있어야 공소시효 인정
지금까지의 연예계 미투는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나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피해자나 지인 등이 관련 주장을 제기하고 언론에 여기에 주목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이나 연예관계자가 해명, 또는 반박하는 수순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10월 27일 피해를 호소하는 B 씨가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A 감독을 상대로 강간치상 혐의 고소장을 접수했고, 그 사실이 11월 1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외국에서 살며 사업을 하던 여성 B 씨는 2003년 10월 지인 소개로 현지에서 A 감독을 처음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문제는 술자리가 끝난 뒤에 벌어졌는데 A 감독이 자신이 투숙하고 있던 호텔로 B 씨를 불러 성폭행하고 상해를 입혔다는 게 B 씨의 주장이다. 당시 A 감독은 B 씨에게 속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위 시선 등으로 인해 A 감독을 성폭행 등으로 고소하지 못한 B 씨는 오랜 기간 당시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지냈고 2018년 국내 연예계와 예술계 전반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다시 당시의 상처가 떠올라 정신과 치료 등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정신과 치료 등으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B 씨는 국내로 들어와 A 감독에게 연락해 늦게라도 진정한 사과를 받으려 했지만 A 감독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고소에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A 감독은 이런 B 씨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련 보도가 이뤄진 11월 1일 바로 A 감독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로 B 씨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접수했다. A 감독 측은 조만간 무고 혐의 추가 고소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증거는 B 씨가 고소 당시 경찰에 증거로 제출한 A 감독과의 통화 녹취록이다. 연합뉴스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B 씨가 “분명히 그 호텔에서 제 팔을 잡아끌고 침대로 저를 데리고 간 것, 그 성폭행 부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자 A 감독은 “혼자 자고 있는데 B 씨가 (호텔 방에)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가짜로 기억하고 있느냐”고 반박했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전화로 할 수 없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고 싶다”는 B 씨의 요구에 A 감독은 “지금은 이동 중이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답했다. 또한 A 감독은 “성폭력 관련해서는 B 씨도 잘 아시지만, 민감하지 않느냐. 기사가 나오는 순간 하루아침에 저는 박원순이나, 말씀하신 김기덕이나 이런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녹취록을 두고 A 씨 측은 “A 감독이 간음 사실은 인정했다”는 입장인데 반해 A 감독 측은 “사실이 아닌 것을 인정하라 협박하기에, 사실이 아닌 것을 어떻게 인정하라는 것이냐고 항변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수사 과정에서 실제로 그날 호텔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B 씨가 자발적으로 온 것인지, A 감독이 불러서 온 것인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 진술이 일관성 있고 논리적이라면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는 성범죄의 입증과 관련된 부분일 뿐 이번 사건은 강간과 강간으로 물리적·심리적 상해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존재해야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쟁점은 과연 공소시효가 남아 있느냐다. 물론 경찰 수사 결과가 ‘혐의 없음’으로 나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할 수도 있다. 반대로 경찰 수사 결과 혐의가 입증돼 기소 의견으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될 수도 있다. 문제는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을 때 기소가 가능하느냐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강간치상의 현행 공소시효는 15년이다. 이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공소시효가 10년이었다. 그렇지만 2010년 4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예외 조항이 생겼다. 강간과 강제추행, 강간 상해·치상, 강간 살인·치사 등의 혐의는 DNA 증거 등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때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되는 것.
따라서 B 씨가 A 감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2003년 10월 발생 강간 치상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3년 10월까지지만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2023년 10월까지 10년 연장된다. 참고로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발생한 사건의 공소시효는 과학적 증거가 있을 경우 25년이 된다.
만약 혐의가 강간치상이 아닌 강간의 경우 현행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2007년 이전에는 7년이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강간 혐의였다면 과학적 증거가 존재할지라도 17년이기 때문에 2020년 10월로 공소시효가 지났다.
B 씨 측은 녹취록 외에도 사건 당시 입었던 옷과 선물 받은 속옷 등의 증거도 확보돼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건 당시 입었던 옷에서 체액이나 정액 등 사람 유전자형이 검출된다면 과학적 증거로 공소시효 연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법조계에서는 강간치상의 과학적 증거는 더욱 입증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과학적 증거로 강간 혐의가 입증될지라도 공소시효가 지난 터라 당시 강간으로 물리적·심리적 상해가 발생했는지가 입증돼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혀 관련 기록이 증거로 제출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해가 2003년 범죄로 인한 것인지까지 입증돼야 과학적 증거로 인정돼 공소시효 연장이 가능하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