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ㆍ법조 약진… ‘속사정’ 이 보인다
▲ 현대차그룹이 사정기관 출신 인사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것은 정의선 부회장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그러나 ‘삼성 특검’을 통해 대부분 사안이 마무리되면서 사외이사의 역할 비중이 작아졌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삼성 역시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방향에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오히려 금융권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향후 경영권 승계 작업을 대비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5명이던 사외이사 중 이갑현 전 외환은행장과 요란맘 보트하우스사 회장이 임기가 만료돼 사임했다. 올해는 이인호 신한은행 고문 1명만 영입하면서 4인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삼성물산도 기존 5명의 사외이사 중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백윤기 아주대학교 교수가 물러났으나 새로운 인사를 영입하지 않았다. 삼성카드는 올해 선임한 3명의 사외이사가 모두 경제나 경영 전문가들이다. 이외에 삼성생명이나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삼성중공업 등 대부분의 상장사들 중에서 눈에 띄는 영입이 없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법원이나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최근의 방침을 더욱 강화했다. 그룹의 주력인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오세빈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기아자동차는 홍현국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김원준 전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본부장을 새로이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모비스 역시 이태운 전 서울고등법장, 이병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박찬웅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현대건설은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박상옥 전 서울북부지검장을 새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현대차그룹이 국세청 공정위 검찰, 사정기관 출신 인사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것은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간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편법 승계’라는 비판에 시달려왔던 현대차는 정의선 체제 전환을 후방 지원할 만한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는 해석이다.
SK그룹의 경우 최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을 보여주듯 현 정부와 접점이 많은 인사들 영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SK는 현재 정부로부터 통신비와 기름값 인하에 대한 거센 압박을 받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무조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 실장을 지낸 권태신 유엔평화센터 아시아태평양센터 이사장의 영입이 눈에 띈다. 권 이사장은 총리실장으로 일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SK네트웍스는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광진구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윤남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또한 ‘정통 대우맨’으로 잘 알려진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SK가스는 신현수 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영입했다. 신 변호사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고 현재는 국세청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업무 연관성이 높은 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해왔다. LG그룹의 차세대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LG화학은 지식경제부 산하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장 출신인 오승모 전 서울대 교수를 새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최근 LG화학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인 2차전지 사업에 대한 그룹 차원의 관심을 보여주는 셈이다. LG이노텍은 반도체 패키지 분야 전문가인 김정일 시그네틱스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대기업이 중견기업 최고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건 이례적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