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3세 정기선 인수 성공 뒤 사장 승진…기존 현대건설기계 임원 4명 퇴사 수순 “인수를 한 건지 당한 건지” 볼멘소리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성공한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두산인프라코어(옛 두산인프라코어) 관련 소송 리스크를 해소하면서 최종적으로 인수를 끝마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월 30일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지분을 둘러싼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재무적투자자(FI) 간의 소송전이 6년 만에 마무리됐다. 전날인 10월 29일 현대두산인프라코어가 3050억 원에 DICC 지분 20%를 FI들로부터 매입하면서다. FI의 최초 투자금 3800억 원보다 적은 금액으로 지분을 인수한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서 조선·에너지·건설기계를 중심으로 한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현대중공업지주를 정점으로 중간지주사들이 핵심사업들을 거느리는 식으로 개편됐다. 지난 7월 28일 공식 출범한 현대제뉴인은 그룹 내 건설기계사업 부문을 통합 관리하는 중간지주사 역할을 맡게 됐다. 8월 1일 첫 단추로 현대건설기계의 부품사업을 인수했다. 현대건설기계의 산업차량 사업부문도 내년 1월 1일 양수할 예정이다. 현대제뉴인은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1.15%, 현대건설기계 지분 33.12%를 보유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숙제는 자금조달이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8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유상증자 사용 내역에 따르면, DICC 주요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3050억 원과 법인세 2000억 원, 채무상환자금 1000억 원 등 총 6050억 원을 채무상환에 사용한다. 나머지 1950억 원은 신사업·전략적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증자 대금 중 75.6%가 빚을 갚는 데 쓰이는 셈이다. 앞서 10월 12일에는 액면가만을 주당 5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는 액면가 감액 무상감자를 완료했다.
이 같은 행보는 소액주주의 반발을 샀고, 시장에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건설기계 사업부문 구조재편 방식과 내용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구조재편과 관계된 업체 중 뚜렷한 수혜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현대건설기계는 미래 성장사업인 부품사업을 현대제뉴인에 매각했고, 현대중공업지주는 직접 보유하던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비상장 자회사인 현대제뉴인을 통해서 보유하게 되면서 해당 지분에 대한 할인율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기능품사업 및 산업차량 영업양수도 건은 현대제뉴인에서 적기 투자를 통해 사업을 확장, 육성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며 “특히 기능품사업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보는 사업이다. 산업차량 사업양도는 산업특성이 다른 지게차 사업을 매각하고, 건설장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지난 2011년 지게차 사업을 매각하고, 건설장비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선 사장과 임원의 엇갈린 명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신임 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의 최대수혜자로 거론된다. 정 사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에 부장으로 재입사한 뒤 2014년 상무, 2015년 전무로 승진하며 경영 수업을 차곡차곡 받았다. 2017년 부사장에 오르며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30년여 동안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해온 현대중공업그룹의 차기 회장이 되기 위해선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만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조선·정유업이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2019년 3월 인수한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지연됐다. 그간 사장으로 승진시킬 명분을 찾을 수 없던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전환됐다. 당시 정 부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작업 전반을 총괄 지휘했다. 매각 주관사로 선정된 크레디트스위스(CS)는 정 부사장이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올해 2월 현대중공업지주와 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4%를 8500억 원가량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두산중공업과 체결했다. 이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제뉴인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승인했고, 8월에 인수대금이 완납됐다.
지난 10월 12일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정기선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했다. 정 신임 사장이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과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은 적은 있지만, 대표이사로서 그룹 핵심 계열사 이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이한 점은 건설기계사업을 이끌 부회장단에 두산인프라코어 출신이 대거 중용됐다는 점이다. 손동연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이 현대제뉴인 부회장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승현 부사장과 최철곤 부사장은 각각 현대두산인프라코어 공동 대표이사,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두산인프라코어 출신이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사업부문 수장을 모두 맡게 된 셈이다.
임원 인사에도 두산 출신들이 약진했다. 현대건설기계가 대표적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출신의 전무 2명과 상무 4명이 현대건설기계에 신규 선임됐다. 현대건설기계 임원 중 1명이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 자리를 옮겼다. 임원들이 두산 출신들로 채워지면서 기존의 현대건설기계 임원 4명이 자문역으로 물러났다. 자문역은 임기 1년 뒤 회사를 나가는 수순을 밟는다. 문재영 영업본부 전무와 김상웅 중국사업본부 부사장(전무)만 자리를 보전했다는 평가다. 현대건설기계 내부에선 “인수를 한 것인지, 인수를 당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건설기계가 현대오일뱅크 윤활유 사업을 위해 거래처까지 바꾸면서 내부에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현대건설기계는 현대오일뱅크(47억 원)와 현대오일뱅크상하이(60억 원)로부터 원재료를 107억 원가량 매입했다. 2019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현대오일뱅크와의 내부거래액이 5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현대건설기계의 내부거래액이 가장 많은 국내 계열사는 현대오일뱅크로 바뀌었다.
올해 상반기 현대오일뱅크의 윤활유 사업 영업이익은 921억 원으로 정유 부문 영업이익(909억 원)을 넘어섰다. 내년 IPO를 추진하는 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선 윤활유 사업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측정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12년, 2018년 두 차례 상장을 추진하다 철회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앞서의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올해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진행된 인적교류는 현대건설기계와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양사의 기술 및 기업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를 도와 물리적 결합을 넘어선 화학적 결합을 유도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신속히 양사의 협력체제를 안정화하려는 의도에서 실시된 것으로 향후에도 지속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활유 거래처 변경과 관련해서는 “현대오일뱅크 외 다양한 곳에서 윤활유를 구입하고 있으며, 최근 3개년간 업체별 공급물량에 큰 변동 없다”며 “현대오일뱅크를 위해서 거래처를 바꿨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