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조규성 권경원 맹활약, 기성용 빈자리엔 김민재 정우영 황인범…본선행 ‘꽃길’ 이란 극복 남아
대표팀을 이끄는 벤투 감독을 향해 초반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게 쏟아졌다. 2차예선을 조 1위로 통과했지만 레바논, 북한 등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팀들과 원정서 무승부를 기록하는가 하면 3차예선 첫 경기 이라크전에서는 홈경기였음에도 골을 넣는 데 실패하며 승점 1점을 따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벤투호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려 불식시킨 벤투호
이번 11월 A매치 기간 중 열린 월드컵 예선 2경기에서 대표팀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를 상대로 2연승을 거뒀다.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을 선보였고 이라크 원정에서는 3-0 다득점 경기를 펼쳤다. 그간 일각에서 이어지던 벤투호를 향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정이었다.
특히 이번 2연전을 앞두고 불안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공격과 수비에서 확고한 주전 선수였던 황의조(지롱댕 보르도)와 김영권(감바 오사카)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지난 3년여 꾸준히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려 왔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나선 37경기 중 김영권과 황의조를 각각 29경기에 출전시켰다. 31경기의 김민재(페네르바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활용된 선수들이다.
핵심 선수 2명이 빠졌지만 대표팀은 보란 듯 2연승을 거두며 우려를 씻어냈다. 왼발잡이 수비수 권경원(성남 FC)이 무난한 활약을 펼쳤으며 황의조의 원톱 자리에 나선 조규성(김천 상무)이 큰 주목을 받았다.
벤투 감독은 3차예선 일정이 시작된 이래 공격수 포지션에 황의조와 함께 조규성을 줄곧 선발해왔다. 조규성은 이전까지 연령별 대표에서만 활약했을 뿐 A대표 경력이 없었다. 9월과 10월 두 번의 소집에서 벤투 감독은 짧은 시간이나마 조규성에게 출전 기회를 주며 검증의 시간을 거쳤다. 이후 경쟁자의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조규성은 놓치지 않았다. 이전까지 '백업 공격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던 벤투호에 조규성에 등장한 것이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축구 해설위원은 조규성의 활약에 대해 "2부리그 시절부터 차근차근 성장해온 선수"라며 "대표팀에서도 확실한 경쟁력을 보였다. 황의조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큰 키와 벌크업 된 몸을 활용한 포스트플레이 같은, 황의조에게 보기 어려운 플레이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황의조가 돌아온다면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차겠지만 선수층이 두터워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권경원 역시 이번 일정에서 왼쪽 센터백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경기가 펼쳐질 때마다 팬들이 그리움을 호소하던 선수가 있다. 지난 3회의 월드컵에서 대표팀 중원을 책임졌던 기성용이다. 기성용은 2018 러시아월드컵과 2019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떠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에 팬들의 그리움은 컸다.
벤투호는 기성용의 빈자리도 성공적으로 메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방 지역에서 경기를 조립하던 그의 역할을 1명의 대체자가 아닌 수비수 김민재와 미드필더 정우영(알사드), 황인범(루빈 카잔) 등이 적절히 나눠 맡으며 매끄러운 경기를 펼치고 있다. 특히 정우영과 황인범은 한때 불안함을 지적받기도 했던 선수들이지만 현재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운마저 따라주는 대표팀
한국 축구는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위기를 맞았다. 최종전에서야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등 예선에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고전했다. 그 과정 속에서 감독이 교체되는 등 불안한 행보도 보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 3차예선,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쥔 대한민국과 플레이오프로 향한 시리아의 승점차는 단 2점이었다. 1경기 결과로 본선 진출 여부가 갈린 것이다. 예선 기간 중 대표팀 사령탑이 울리 슈틸리케에서 신태용으로 교체되는 진통을 겪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최종예선'으로 불리는 단계 이전부터 레바논에 패하는 등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신하지 못했고 결국 조광래 감독이 경질됐다. 후임 최강희 감독도 최종예선에서 불안한 행보를 보였고 경쟁자 우즈베키스탄과 승점에서 동률, 골득실에서 승부를 가려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잡아냈다.
반면 이번 예선 일정에서는 '꽃길'을 걷고 있다. 당초 3차예선 조편성 이후 전망은 밝지 않았다. 중국, 베트남 등을 만나지 못한 채 이란, UAE,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 같은 조에 모두 중동팀들만 배치됐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천적'으로 불리는 이란의 존재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벤투호는 현재까지 이 같은 난관을 잘 극복하고 있다. 고비로 여겨지던 이란 원정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한때 앞서 나가기도 했다. 비록 동점골을 내줘 무승부로 경기가 마무리됐지만 슈팅조차 기록하기 어려워하며 고전했던 전임 감독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운도 따라줬다. 선두 싸움을 벌이는 이란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쟁팀들이 서로 무승부를 반복하며 승점차가 벌어졌다. 현재 조 3위 UAE는 1승 3무 2패를 기록, 승점 6점에 불과하다. 이는 본선행 티켓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호주 3국이 치열하게 경쟁 중인 B조 상황과 대비된다.
#월드컵까지 1년, 남은 과제는?
월드컵 예선 일정은 반환점을 막 돌았지만 대표팀은 호성적과 행운 속에 본선 진출에 성큼 다가서 있다. 지상 과제였던 본선 티켓 획득은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는 본선 무대를 바라보며 대비해야 한다. 지난 17일 이라크전을 월드컵 개최지 카타르에서 치른 대표팀은 코칭스태프 등 일부 인원이 남아 선수들이 월드컵 기간 중 지낼 베이스캠프 후보지 답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은 '월드컵 체제'를 시작한 것이다.
예선 일정은 4경기가 남았다. 3월 말 최종전 일정이 종료되면 월드컵 개막까지 7개월의 준비 기간이 있다. 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모의고사'인 강팀과 평가전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축구환경의 변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등으로 대표팀이 유럽 국가와 친선경기를 한 것은 2019년 9월이 마지막이다. 협회의 행정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벤투호를 향한 또 한 가지 팬들의 바람은 '이란 징크스 탈출'이다. 아시아 강호로 분류되는 한국은 유독 이란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역대 전적에서 9승 10무 13패로 열세다. 최근 7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90분 정규시간 내 승리는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란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돌아온 벤투호는 이란과 홈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날짜는 2022년 3월 24일, 월드컵 3차예선 A조에서 사실상의 1위 결정전이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이란을 승점 2점차로 추격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