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치료제 개발 집중 속 본업 바이오시밀러 성장 정체…경구용 치료제 등장에 시장 축소 우려도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EC)에서 정식 품목허가를 받았다.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에서 판매 승인 권고를 받은 지 하루 만이다. EC는 보통 권고일로부터 1~3개월 뒤에 판매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비추어 렉키로나의 판매 승인은 매우 빠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렉키로나의 효능과 안정성을 두루 인정받은 결과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현재 유럽에서 처방되고 있는 코로나19 치료제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스 사이언스의 ‘베클루리(성분명 렘데시비르)’가 유일하다. 렉키로나와 같은 날 스위스 제약사 로슈·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코로나19 치료제 ‘로나프레베(성분명 카시리비맙·임데비맙)’도 EC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다. 즉 렉키로나·로나프레베는 베클루리 이후 유럽 당국에서 처음으로 판매 승인을 한 치료제다. 지금까지 베클루리 일변도였던 시장 지형에 렉키로나·로나프레베가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셀트리온은 유럽 30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렉키로나 수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같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셀트리온 주가는 유럽 승인 직후인 지난 15일 종가 23만 3000원을 기록하며 전일 대비 9.13% 올랐다. 하지만 이는 당일 고가 25만 1000원에서 한참 내려온 주가다. 다음 날부터 셀트리온 주가는 4거래일 연속 떨어지면서 18일 21만 5000원으로 마감했다. 올해 초 렉키로나에 대한 기대감에 40만 원대까지 올랐던 것을 고려할 때 반 토막 수준이다.
셀트리온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로는 경구용 치료제와의 시장성 문제가 우선 꼽힌다. 렉키로나는 정맥 주사용 항체 치료제로, 알약보다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경구용 치료제에서는 머크앤컴퍼니(머크)와 화이자, 로슈 등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특히 머크의 ‘라게브리오(성분명 몰누피라비르)’는 지난 4일 영국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으면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라게브리오는 현재 EMA의 순차 심사를 진행 중이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 심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구용 치료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총 40만 4000명분의 경구용 치료제를 내년 도입할 예정이다. 앞서 머크와 화이자로부터 지난 9월과 10월 각각 20만 명, 7만 명분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남은 13만 4000명분에 대해서는 11월 내 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추가 물량을 도입할 계획도 시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17일 라게브리오의 긴급사용승인 심사를 시작했다. 또 화이자의 ‘팍스로비드(성분명 리토나비르)’에 대해서도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공인받은 약품의 경우 효능이나 효과에 대한 판단보다 어떻게 마케팅을 하느냐가 사실 더 중요하다”며 “경구용 치료제는 복용 편의성 측면에서 시장에서 기대심리 자체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항체 치료제와 경구용 치료제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통상 항체 치료제는 높은 안전성을 보이지만, 경구용 치료제는 변이 바이러스에 강점이 있다. 이 때문에 백신 접종 상황이나 확진자·위중증 환자 수, 치료제 가격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얼마든지 함께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각 약품마다 장단점이 상이하기 때문에 환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뿐이라는 얘기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경구용도 개발에 따라 중증까지 포괄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경증의 경우 경구용을 선택했다고 하면, 중증은 주사용 항체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며 “환자 상태에 따라 의사가 처방을 하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렉키로나가 같은 항체 치료제인 로나프레베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EC는 앞서 렉키로나를 승인하면서 사용 대상을 코로나19가 확진된 만 18세 이상 성인으로 정했다. 또 보조적 산소 공급이 필요하지 않고 중증 이환 가능성이 높은 환자의 치료에 쓰이도록 했다. 반면 로나프레베는 최소 몸무게 40kg 이상인 만 12세 이상 청소년과 성인의 치료에 사용하도록 했다. 특히 이들의 코로나19 예방에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범용성이 더 확대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렉키로나는 자체 임상이나 개발, 이후 허가 과정에서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됐고 국내에서는 2만 명 넘게 사용됐다”며 “경구용 치료제는 아예 다른 약품이므로 말씀드리기 어렵고, 로나프레베에 대해서도 같은 날 허가돼서 경쟁한다기보다 렉키로나의 자체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의 올해 실적이 저조하다는 점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셀트리온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4010억 원, 164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26.9%, 33.1% 감소했다. 셀트리온의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 실적은 더 악화됐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4097억 원, 220억 원으로 각각 11.7%, 81.8% 급감하며 어닝쇼크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이 본업인 바이오시밀러보다 렉키로나 등 신약 개발에 집중하면서 성장이 정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제품인 트룩시마가 미국에서 성장률이 둔화됐고, 신제품인 유플라이마·램시마SC 등의 매출이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을 쏟았던 렉키로나가 EMA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부진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치료제에 집중하면서 단기 펀더멘털이 약해졌다”며 “본업인 바이오시밀러의 성장 모멘텀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동건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지난해 호실적의 배경인 북미 트룩시마 매출 고성장 및 높은 이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라며 “고수익성 품목인 유플라이마, 램시마SC의 성과가 향후 실적 및 주가 반등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셀트리온 소액주주 사이에서는 공매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유럽 판매 승인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 하락을 기대하는 공매도 세력 탓에 주가가 오히려 내렸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주식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공매도가 많은 종목이지만 최근 더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15일 기준 셀트리온 잔고금액은 1조 644억 원으로 유가증권시장 1위다. 이 때문에 사측이 주가 방어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램시마의 경우 미국 시장 점유율이 계속 오르고 있고, 유럽 시장에서도 이미 오리지널 제품의 점유율을 뛰어넘었다”며 “연구·개발과 임상 허가 등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가 상황과 관련해서는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므로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