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은 영어권 드라마 1위였던 ‘브리저튼: 시즌 1’(6억 2549만 시간), 비영어권 드라마 2위 ‘종이의 집: 파트 4’(6억 1901만 시간)와는 10억 시간 이상 차이가 났다. 영어권 영화 1위 ‘버드 박스’와 비영어권 영화 1위 ‘블러드 레드 스카이’ 시청 시간은 각각 2억 8202만 시간, 1억 1052만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는 세계의 시청자들이 ‘오징어 게임’에 매료됐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은 46일간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이 또한 넷플릭스 역사상 최장기록이다.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칸 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기생충은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영화로 발돋움했다.
이제 한국의 영화, 드라마, 가요, 웹툰, 웹소설 등은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 콘텐츠들은 아시아 변방 소국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아니다. 메인 스트림에서 만들어지는 주류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대한민국이 건국할 당시엔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꿈도 꿀 수 없던 일이 2021년 현재엔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다양한 한국 콘텐츠의 약진은 세계인들 머릿속에 ‘K-Contents’라는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됐다.
왜 세계인은 한국 콘텐츠에 열광할까. K-콘텐츠의 어떤 면이 세계인 가슴과 머릿속에 자리잡게 됐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K-콘텐츠 저력 이면엔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화의 존재감이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만큼 자기 사회의 문제를 아무런 제약과 간섭 없이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검열, 제약, 간섭 중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에서 알 수 있다. 두 작품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빈곤 문제, 소외 문제 그리고 양극화 문제를 가감 없이 비판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콘텐츠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가난과 양극화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 시스템 문제인 만큼 정부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대한민국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고민하고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선배들의 희생과 투쟁 속에 힘들게 얻어낸 민주화의 성과가 자유로운 창작 진영을 이루어낸 결과로 나타났다. 솔직하고 진솔한 주제의식은 같은 문제에 봉착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다음으론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386세대인 나는 콘텐츠 비즈니스에 입문한 1990년대 우리 콘텐츠가 세계 1위를 할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다. 거의 모든 콘텐츠 종사자들이 공히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배들은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국가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조선, 전자, 반도체, 자동차는 물론이거니와 게임, 스포츠,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자신들이 세계 톱티어가 될 수 없다는 가슴 속 장벽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자신감 자체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겠나’라든가 ‘우리가 세계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나’라는 의심이 없다. 이제 콘텐츠 산업에 진입하려는 신진세대에서도 이런 두려움은 찾을 수 없다.
예전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 자체가 공염불에 불과했다. 한국적인 것은 그냥 한국만의 문제고 한국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에서 10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력, 성숙한 민주사회, 그리고 자신감에 가득찬 사람들이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창작물들은 세계인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됐다. 한국 창작자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적 기준)로 자리잡고 있는 양상이다.
고무적인 점은 ‘K-콘텐츠’ 약진은 정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를 보며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고 충성도가 생긴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미래 먹거리로 ‘K-콘텐츠’가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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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