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상승에 조건 맞는 집 구하기 어려워…“2년 연장됐지만 조건 그대로”
#높아진 전세가에 조건 맞는 집 찾기 어려워
청년들에게 중기청 대출 조건 중 가장 큰 맹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임차보증금이 2억 원 이하면서 임차 전용면적이 85㎡(25평) 이하’이다. 현실적으로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쉽지 않다.
부동산중개사들에 따르면 서울에서 중기청 대출 조건에 맞는 곳은 잘 구해봐야 33㎡(10평) 내외다. 원룸 수준의 방만 구할 수 있는 셈이다. 기자가 의뢰한 결과, 실제로 중개사들이 보여준 방은 고시원 방 크기보다 조금 넓은 수준이었다. 서울 구로구의 한 부동산중개사는 “나라에서는 1억 원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대상자들인 청년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대부분 집 전세가 2억 원을 넘는데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어떻게 집을 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2018년 6월에 중기청 대출이 도입된 이후 올해 10월까지 주택 전세 가격 상승률은 전국 14.9%, 서울 22.7%에 달한다. 전세 가격이 오르면서 청년들이 중기청 대출을 이용하려고 해도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지난 3년간 전세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울에서 2억 원 이하 전세를 구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설사 2억 원 이하 전세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좁은 원룸이어서 불편하다.
#은행들 “대출이 가능한지 확실치 않다”
은행 심사 절차도 까다롭다. 중기청 대출이 가능한 은행은 총 5곳으로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국민은행이다. 중기청 대출이 되는 전셋집을 소개받아 건물의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한 달치 급여명세서, 신분증 등 관련 서류를 준비해 은행으로 향했다. 본격 심사 전 가심사를 통해 대출 여부와 대출 한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건물이나 개인 신용에 문제가 있는지 미리 파악하는 과정이다. 융자가 많은 전세나 개인신용, 재직기간에 따라 대출이 어려울 수 있으며 한도가 줄어들 수도 있다.
첫 번째 은행에서는 건물에 융자가 너무 많이 잡혀 있어 대출이 힘들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집에 융자가 많아 대출이 많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집을 알아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두 번째 은행에 찾아갔다. “고객님께서 재직하신 지 오래 되지 않으셔서 (대출이) 적게 나올 수 있어요. 집에도 융자가 좀 잡혀 있어서 대출이 나올지 안 나올지조차 정확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나머지 은행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은행원들은 ‘대출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집 융자가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재직 기간이 너무 짧아서 대출이 많이 안 나올 수 있다’, ‘주택 면적이 50%가 안 넘어서 이 집은 대출이 불가할 수 있다’며 확실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최대한 중기청 대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집을 다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계약금 돌려받지 못할까 불안
운 좋게 중기청 대출 본격 심사에 들어가면 임차보증금의 5%를 계약금으로 납입했다는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도 집을 구하는 청년들에게는 불안 요소다. 중기청 대출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약금을 넣었다가 대출이 불가능하거나 생각보다 대출금이 적게 나와 계약을 못하면 계약금을 돌려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은행원은 “집주인이 계약금을 안 돌려줘서 낭패를 본 고객을 3명이나 봤다”며 “되도록 융자 없는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에 ‘어떤 이유에서든 대출이 불가하면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특약도 꼭 넣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기청 대출로 전세를 구해 산 지 2년이 돼 가는 B 씨(29)는 “계약서에 계약금 반환 특약사항을 추가하려고 하면 집주인들이 안 해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약사항에 대해 중기청 대출 상품에서 의무로 지정해줬으면 좋겠다”며 “대출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약금을 거는 것은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경험해보니 국가에서 청년들의 주거비를 지원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만든 중기청 대출이 왜 실효성이 떨어지는지, 청년들이 왜 중기청 대출을 점점 외면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먼저, 높아진 전세 가격 때문에 중기청 대출 조건에 맞는 전세를 찾기 힘들었고, 중기청 대출이 온전히 되는 집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외에도 불확실한 대출 여부, 계약금 문제, 서류 준비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실제 올해 중기청 대출 이용 건수는 크게 줄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중기청 대출 이용 건수는 총 5만 5854건으로 같은 기간 기준 2020년과 2019년의 70.8%, 71.7%에 불과하다. 당초 올해 12월 끝날 예정이던 중기청 대출은 2년 연장돼 오는 2023년까지 이용 가능하다. '연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청년들의 주거비 안정에 큰 도움을 주고 청년들이 이용하기 쉽게 하는 것에 더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중기청 대출에 대해 “2023년 말까지 연장됐지만 추가되거나 바뀐 조항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이민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