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출신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 선임…이커머스 전환 능력 보여줄지 관심
롯데지주는 25일 이사회를 열고 그룹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안을 발표했다. 우선 기존 유통,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등 4개 비즈니스유닛(BU) 체제를 대신해 헤드쿼터(HQ) 체제를 도입했다. 업의 공통성 등을 고려해 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로 계열사를 나누고, 주요 사업군인 식품·쇼핑·호텔·화학은 HQ 조직을 갖춰 1인 총괄 대표 주도로 면밀한 경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룹 정기 임원 인사에서는 유통업 수장들을 외부 인사로 채웠다. 기존 롯데쇼핑 대표이자 유통BU장을 맡았던 강희태 부회장이 퇴임하고, 김상현 전 DFI 리테일그룹 대표가 롯데쇼핑 대표로 뽑혔다. 김 신임 대표는 미국 P&G에 입사해 한국 본사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 본사 신규사업 부사장을 거쳤다. 이후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냈고, 2018년부터 DFI 리테일그룹의 동남아시아 유통 총괄대표, H&B 총괄대표를 역임했다. DFI그룹은 홍콩·싱가포르·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대형마트·슈퍼마켓·H&B 스토어·편의점을 운영 중인 홍콩 유통기업이다.
롯데백화점도 기존 황범석 대표에서 신세계 출신 정준호 롯데지에프알(GFR)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정준호 신임 대표는 신세계그룹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뒤, 2018년 롯데쇼핑이 패션사업 강화를 위해 롯데GFR을 분사하면서 롯데그룹으로 옮겼다. 타 사업부는 호텔롯데 대표였던 이봉철 사장이 물러나고 안세진 전 놀부 대표가 대표를 맡았고, 롯데컬처웍스 대표로는 최병환 전 CJ CGV 대표가 내정됐다. 이외 사업부에서는 롯데 내부 인사 승진 등 작은 변동이 있었다.
업계는 롯데가 그간 고집해온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수혈’을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롯데그룹이 롯데쇼핑과 롯데백화점 대표로 외부 인사를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쇼핑은 그간 주로 백화점 출신 내부 인사들이 경영진을 맡으면서, 오프라인 경영 마인드 때문에 이커머스 전환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유통은 결제 시스템부터 화면 구성, 앱 운영 등 다양한 노하우와 투자가 집약돼야 하는 만큼 오프라인과 구조적으로 다르다”며 “처음으로 외부 인사가 수장이 된 만큼 기존의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시각과 충격파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봤다.
다만 반쪽 쇄신이었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유통과 호텔, 컬처웍스 등 일부 사업 부문의 수장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의 임원 명단에는 여전히 ‘롯데맨’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강희태 유통BU장을 대신해 투입된 김상현 신임 대표의 경우 눈에 띄는 이커머스 사업 경험이 없다. 김 신임 대표의 글로벌 유통 경험은 인정하지만, 지금 롯데쇼핑이 가장 시급한 이커머스 전환에 걸맞은 인물이냐는 데 물음표가 찍힌다.
김상현 신임 대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영 활동을 했던 홈플러스 사장 시절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신임 대표는 지난 2016년 초 홈플러스 사장으로 취임했다. 홈플러스 대주주가 MBK파트너스로 바뀐 뒤 처음 투입된 수장이지만, 2010년대 정부의 강력한 유통 규제 정책으로 대형마트 시장은 성장 정체기에 놓인 만큼 두각을 드러내긴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김상현 당시 홈플러스 사장은 이커머스가 아닌 마케팅 수장으로 선임됐다”며 “당시 정부 규제가 강했고, 홈플러스는 사모펀드가 대주주로 통제를 받고 있기에 대대적인 혁신을 이끌어내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