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노동자 차별하는 행위” vs “영세사업자·소상공인도 약자”…사회적 안전망 강화엔 공감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놓고 나오는 상반된 목소리다. 지난 10월 개천절과 한글날 대체 공휴일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만 출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문제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1월 19일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상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된 것도 이슈에 불을 지폈다.
#사각지대가 되어버린 5인 미만 사업장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의 ‘사각지대’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연장 근무에 따른 1.5배 가산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연차 유급휴가를 받지 못한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고, 부당 해고 시 구제신청도 할 수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능하다. 근로기준법 11조가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대통령령에 따라 일부 법 조항만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아니지만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대체휴일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공휴일법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예외다.
문제는 적지 않은 노동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379만 명이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약 18%를 차지한다. 5명 중 1명꼴로 사각지대에 속해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이승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 조건 개선 및 법률 개정을 권고한 게 2008년”이라며 “시행령으로 일부 핵심 조항 적용이라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마저도 진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근로기준법은 사업주보다 힘이 약한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 시간 등 최소한의 근로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영세한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취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도리어 더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에 망설이는 까닭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요구가 계속됐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이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일부 법 조항만 적용하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11조의 개정안 6건이 계류 중이다. 인원과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안(강은미 정의당 의원 발의) 등이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10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사회적 파급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단독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출을) 하기보다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기보다는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결책 모색을 선호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치권 등이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망설이는 건 5인 미만 사업장 약 121만 개 대부분이 영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이 근로자 연장 근무 시 지급해야 할 가산 수당, 부당해고 처리 절차 등에 수반되는 행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도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부분 적용을 합헌으로 봤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지 않았는데 코로나19까지 겹쳐 영세한 사업장은 더욱 힘들어졌다”며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사업이) 망하면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 근로기준법을 당장 적용하는 건 부담”이라고 했다. 양옥선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소상공인 대부분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데 근로기준법을 (일괄적으로) 지키라고 하다가 법을 어기는 사람이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실업자 양산 등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세한 사업장이 가산수당, 유급휴가 등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직원을 유지하는 대신 자동화기기 도입 등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기계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양옥선 실장은 “최근 최저임금 상승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식당이 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지금 전면 적용하면 이런 시스템 도입이 가속화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장 사회적 안전망 강화 필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 적용을 놓고 찬반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소상공인 지원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고민이 해결되면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반대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장은정 소상공인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소상공인 지원책 등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면 영세사업자들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반대할 이유가 크지 않다”고 했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찬반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지원 확대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함께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용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