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거절 당해서…” 50대 부부 살해하고 주택 불 질러…‘성인 연령 18세 하향’ 법 개정 전에 범행 설왕설래
일본의 경우 20세 미만 범죄는 소년법의 처분에 따른다. 이름과 사진을 보도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갱생이나 사회복귀를 저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숙한 청소년이기에 어른이 되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할 수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계획적이고 잔혹성이 높은 범죄라면 어떨까. 이번 사건을 통해 짚어본다.
지난 10월 12일 새벽.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위치한 주택 한 채가 모두 불에 탔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회사원 이노우에 세이지 씨(55)와 아내 후미에 씨(50)가 사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목격한 인근 주민은 “펑,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려 벌떡 일어났다”며 “창문으로 내다보니 주택 전체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고 큰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고 전했다.
불에 탄 집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그날의 참혹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부검 결과 이노우에 씨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화재가 아니라, 10군데 이상 칼에 찔린 출혈과다로 확인됐다. 장기까지 닿을 만큼 깊은 상처도 여럿 존재했다.
당시 사건 현장 2층에는 두 딸들이 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생인 둘째 딸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1층으로 내려갔더니 낯선 남자가 있었다”면서 “도망치다 남자에게 흉기로 머리를 얻어맞았다”고 진술했다. 이후 “언니를 깨워 2층 테라스에서 탈출했다”는 증언이다. 그러나 자매가 목숨을 건져 달아난 직후 가족의 추억이 담긴 가옥은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수사 관계자에 의하면 “화재 발생 15시간 후 현장으로부터 20km 떨어진 파출소에 ‘사람을 죽였다’며 A 군이 출두했다”고 한다. “A 군은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오른손 손가락이 골절돼 있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사건에 휘말린 자매는 동네에서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주민은 “얼마 전 아침에도 자전거로 통학하는 장녀의 모습을 봤다”며 “애교 있는 아이라 스쳐 지날 때마다 밝게 인사를 건네 왔다. 단란한 가족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부모를 잃은 비극에 자매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사건의 ‘타깃’이 된 언니(19)는 ‘내 탓’이라며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지 매체 ‘여성세븐’은 “용의자 A 군이 큰딸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A 군은 평소 조용한 타입으로 교우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등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 A 군이 일방적으로 감정을 키운 상대가 큰딸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A 군은 “마음을 전했지만 교제를 거절당했으며 메신저(라인)가 차단된 것이 범행의 계기였다”고 밝혔다. 사건 전에는 명품 선물을 제멋대로 보내는 등 비정상적인 집착도 보였다.
짝사랑을 성취 못한 A 군은 큰딸의 주소를 알아냈다. 범행이 일어나기 10여 일 전 늦은 밤엔 “자택을 손전등으로 비추는 수상한 인물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도 나왔다. 이와 관련, A 군은 “뜻대로 안 돼 그녀의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발각되면 가족 전원을 죽일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일본 언론들은 “A 군이 여러 개의 흉기를 소지했고 방화를 위해 휘발성이 높은 기름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강한 살의가 엿보인다”고 보도했다. 더욱이 그는 피해자 가족 전원이 확실하게 집에 있는 심야를 범행시간으로 택했다. A 군은 모든 것을 ‘짝사랑’에 걸 만큼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범죄심리학자 우스이 마사시 교수는 “앞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를 없애겠다’는 단락적인 발상에 그친 것 같다”며 “그 결과 옆에 있는 가족이 ‘방해자’로 인식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적인 A 군의 범행은 일본 사회에서 큰 분노를 일으켰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소년법’이라는 장벽이 A 군을 비호했다. 송치하는 경찰차량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고, 경찰은 A 군과 관련된 정보를 일체 차단했다. 이런 가운데 ‘주간신조’가 용의자 A 군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게재해 파문이 일었다. 매체는 “범행의 계획성이나 중대성을 감안해 용의자가 19세 소년일지라도 보도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현행 법제상 14세 미만은 형벌을 받지 않으며, 18세 미만의 경우 사형을 선고받지 않는다. 18세, 19세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처벌은 되지만 실명은 보도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갱생의 기회’를 부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설령 이번 사건처럼 뚜렷한 살의가 있고 무도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말이다.
일본 일각에서는 “지나친 보호주의가 ‘소년법에 의해 보호된다’라는 면죄부를 주고 있으며, 되레 강력사건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의 미성년자 범죄는 날로 흉악해지고 있어 잔혹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소년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쓰쿠바대학의 도이 다카요시 교수(사회병리학)는 이번 사건에 대해 “2명을 살해한 만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형량을 판단하는 중요한 쟁점은 범행동기와 이를 입증하는 증거 여부다. 도이 교수는 “A군에게 강한 살의 및 계획성이 엿보이지만, 병리적 이상이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논란을 안고 있는 일본의 소년법은 내년 4월 변화를 맞이한다. 성인 연령을 20세에서 18세로 낮추는 새 민법이 시행됨에 따라 소년법도 일부 개정되는 것. 가령 18세와 19세는 ‘특정 소년’으로 취급된다. 중대사건일 경우 형사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성인범과 마찬가지로 기소될 경우 실명 보도가 허용된다. 요컨대 18~19세를 소년법 적용 대상에 그대로 두되,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게 골자다. 소년법 개정까지는 앞으로 반년 정도가 남았다. 한 수사 관계자는 “A 군의 범행 계획성을 미뤄볼 때 개정 전에 잔혹사건이 일어난 것이 관련 없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현지 경찰은 방화 혐의에 이어 11월 22일 A 군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가족 전원을 노린 범행 동기에도 의문점이 많아 심도 깊게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