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야 진보야, 나도 좀 같이 가자
▲ 유시민 국참당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진보정당들과의 통합 문제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진은 지난 3월 만난 이정희 민노당 대표와 유시민 대표. |
유대표의 정치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안은 진보통합정당의 참여 문제다. 그는 6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 출판기념회에서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야권 단일정당의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배척하거나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 왔던 만큼 한결 유연해진 모습이다.
유 대표는 그러나 “야권의 정당들이 하나가 되기에는 아직 마음이 덜 모인 것 같다”고 냉정한 현실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단일정당 창당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당위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야권의 모든 정치인, 정당의 마음이 모아져야 가능하다”면서 “정책의 차이를 도덕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고 정책의 선택과 관련한 생각의 변화를 윤리적 회계로 만들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야권이 너무 정당 수가 많다는 국민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모두 하나로 통합이 어려우면 부분적으로 통합하고 연대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참여당의 합류 여부에 쏠린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발언이다. 유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참여당의 독자 생존이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다른 야당과 통합부터 연대까지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점차 절감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통합과 연대의 상대들이 유 대표를 먼저 배제하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작업을 본궤도를 올려놓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주변에선 다음 수순으로 관측되고 있는 참여당과의 통합문제에 대해 ‘심각한 수준’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의 공동대표인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유 대표와 관련해 “그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있다”고 이념노선을 문제 삼았다. 유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주장했던 신자유주의자이며, 진보정당과는 이념적 거리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유 대표가 민노당과 진보신당 간의 5·31 합의문에도 찬성한다고 하면 이는 이제까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사기”라고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보도로 파문이 일자 이백만 참여당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김 교수가 한미 FTA 하나만을 놓고 참여정부와 유 대표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큰 오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 내에 퍼져 있는 이념적 의구심을 풀어주진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유 대표와 이정희 민노당 대표 간의 ‘과속 스캔들’ 논란이다. 두 사람은 최근 정치현안을 놓고 벌인 대담을 엮어 <미래의 진보>라는 책을 냈다. 둘은 이 책에서 한미 FTA, 미국과 북한 문제, 삼성과 재벌 문제 등에서 상당히 엇갈린 견해를 나타냈다. 그런데, 진보신당 쪽에선 “책 내용은 ‘다르다’보다는 ‘함께 갈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선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라, 함께 풀어갈 과제로 인식했기에 공동 저서를 펴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앞서 지난 6월 7일 국회 원내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진보 통합 문제를 언급하며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어렵사리 공동의 정당정책 목표를 설정하는 데 성공해 5·31합의문을 만들어내 각자 추인 수순에 들어갔는데, 느닷없이 참여당을 지칭한 통합발언을 한 것이다. ‘과거를 묻지 않을 대상’이 참여당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진보신당 쪽에선 민노당을 향해 ‘결혼식 날 잡아놓고 바람피운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양당은 5·31합의문과 관련해서도 북한 3대 세습 문제 등을 놓고 민감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터여서 기름을 붓는 듯한 원색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진보통합정당 건설 문제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핵심적인 논점이 이념노선, 정책 지향보다는 ‘유시민 포함 여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참여당과 진보통합정당의 선(先)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경우 차선으로 민주당과의 통합문제가 다시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김해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후보단일화를 놓고 벌였던 전쟁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선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내 비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유 대표도 “내가 민주당에 들어가는 건 매력적이지 않다.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는 권력을 찾아올 수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참여당이 어떠한 통합과 연대의 방식을 선택할지는 예단하기 힘들지만, 과거처럼 ‘벼랑 끝 협상’으로 제 잇속만 챙긴다는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할 경우 자칫 야권 내 ‘왕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권주자로서 유 대표의 매력도 예전 같지 않다. 이미 여론조사에선 야권 대표 주자로 손 대표에 이어 2위 자리를 놓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로 인해 ‘친노그룹의 대표주자’라는 수식어도 사라졌다. 유 대표에게 정치인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극적 변화를 주문하는 외압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