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의 ‘전선이동’ 약발 먹혔다
▲ 6월 21일 보건복지부에서 제2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소분과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부가 의약품 구입 편의를 위해 추진 중인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방안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약사법 개정안을 둘러싼 의료계와 약계의 날선 대립 때문이다. 지난 15일, 보건복지부는 일부 일반 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박카스, 가스명수, 액상 소화제, 마데카솔 등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44개 의약품이 포함됐다. 이들 품목은 약사법을 개정할 필요 없이 복지부 장관 고시만으로 의약외품 선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감기약 진통해열제 등의 의약외품 전환이다. 타이레놀 부루펜 아스피린 훼스탈 제일쿨파프 등의 일반의약품은 약사법이 개정돼야만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 측은 “감기약 진통해열제 등이 약국 외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될 경우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가정상비약이라도 약국에서 약사의 지도 아래 복용하는 게 안전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자 약사회는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판매가 가능한 전문의약품 중 일부 품목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의약품 재분류’를 주장하고 나선 것. 동시에 ‘의약품 재분류 신청서 1차분’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이후 약국 외 판매 의약품 도입을 위해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재분류소분과위원회의 회의에서 ‘의약품 재분류 대상 품목 선정’이 안건으로 올랐다.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가 이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약국에서 판매 가능한 전문의약품 쪽으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약사회의 카드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 보건복지부 건물 앞에서 서울시약사회 회원이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사후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있으므로 의사의 처방이 불필요하다. 게다가 사후피임약은 12시간 내에 복용해야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을 복용하려면 12시간이 지나버려 약효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비만치료제에 대해서도 의사들이 할 말은 없다. 너무 빈번하게 과량으로 처방하는 등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의사들은 “말도 안 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대한의사회 관계자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분류 기준은 ‘약품의 오·남용, 부작용 우려, 의사의 처방 없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등”이라고 전제하고 “사후피임약은 오·남용이 예상되는 대표 품목이다. 비만치료제 역시 마찬가지다. 비만이 아닌 일반인들이 다이어트 목적으로 남용할 수 있고, 이 경우 심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PPI(위장약)는 더 심각하다. 위염 위궤양 위암은 증세가 거의 비슷한데 이를 복용한 위암 환자가 상태가 좋아질 정도로 약효가 강하기 때문”이라면서 “일반인이 PPI를 복용하고 통증이 사라지면 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위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탰다.
한편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는 지난 21일 제2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소분과위원회의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의사와 약사 간의 기존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일반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논의는 시작도 안 한 상태로 회의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시민연대 조중근 대표는 “국민들 입장에서 약국 외 판매 논의가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함을 명심해주길 바란다”면서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약사법 개정뿐”이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의료계가 밀리는 까닭
약사 ‘팀플레이’ 의사 ‘따로국밥’
지난 3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진행돼왔던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방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약사들에게 의사들이 또 당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사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나서 논란이 사그라지긴 했지만 의료계에선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약계 편향적이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결과는 결국 약계보다 의료계의 힘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 의료계가 약계에 비해 조직력과 로비력이 뒤진다는 평이 많다. 왜 그럴까. 의료계 관계자들은 조직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지역 의사협회 간부인 한 개업의는 “의사들의 경우 대학병원부터 개업의까지 의료기관 별로, 또 외과 내과 등 과별로 이해관계가 다 달라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약사들의 이해관계는 거의 일치한다. 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힘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도 “약사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발표되면 하나로 똘똘 뭉쳐 자신들에 유리하게 내용을 기어이 바꾸고 만다. 반면 의사들은 각 과마다 정책에 대한 의견이 매번 달라 내부적으로 견해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곤 했다. 합의점을 어렵게 찾은 뒤에도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정]
약사 ‘팀플레이’ 의사 ‘따로국밥’
지난 3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진행돼왔던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방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약사들에게 의사들이 또 당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사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나서 논란이 사그라지긴 했지만 의료계에선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약계 편향적이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결과는 결국 약계보다 의료계의 힘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 의료계가 약계에 비해 조직력과 로비력이 뒤진다는 평이 많다. 왜 그럴까. 의료계 관계자들은 조직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지역 의사협회 간부인 한 개업의는 “의사들의 경우 대학병원부터 개업의까지 의료기관 별로, 또 외과 내과 등 과별로 이해관계가 다 달라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약사들의 이해관계는 거의 일치한다. 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힘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도 “약사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발표되면 하나로 똘똘 뭉쳐 자신들에 유리하게 내용을 기어이 바꾸고 만다. 반면 의사들은 각 과마다 정책에 대한 의견이 매번 달라 내부적으로 견해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곤 했다. 합의점을 어렵게 찾은 뒤에도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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