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서 달라 과거 사건 포착 못해…경찰, 학대예방 APO시스템 스토킹 범죄에도 확대키로
그만큼 일선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스토킹 피해 통합 이력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해왔다.
#전 여자친구에게 흉기 휘두른 남성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군의 한 아파트 계단에서 20대 남성 A 씨(26)가 전 여자친구 B 씨(22)와 대화를 나누다가 패딩 속에 숨겨놓은 흉기로 찌르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B 씨 어머니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CCTV 분석,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약 한 시간 만에 읍내의 한 골목에서 A 씨를 체포했다. B 씨는 충북 소재 대학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현재 회복 중으로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가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 6층에서 10층까지 달아나는 B 씨를 뒤쫓아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경찰은 계획적인 범죄라고 판단하고 있다. A 씨는 현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경찰은 A 씨에게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할지도 검토 중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우, 사건 이전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전 애인을 괴롭히는 스토킹이 수반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옥천경찰서 관계자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게 10월 21일”이라며 “A 씨 휴대폰 포렌식 결과가 나오면 혐의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 씨와 B 씨는 약 3년 동안 사귀고 한 달 전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킹 피해 연관성 파악 못해
실제로 A 씨가 흉기로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다양한 ‘전조증상’이 있었다. A 씨는 B 씨와 교제하는 기간에도 B 씨를 여러 차례 괴롭혔다고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A 씨가 B 씨의 옥천 거주지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다가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었다. CJB청주방송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에는 A 씨가 대전에 있는 B 씨 자취방에서 ‘귀가를 늦게 한다’는 이유로 B 씨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해 전치 2주 상해를 입혔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 송치돼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관할서인 옥천경찰서와 대전 대덕경찰서는 이런 A 씨와 B 씨 사이에 있었던 지난 사건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속 지방경찰청이 달랐기 때문이다. 각 지방경찰청 상황실에 접수되는 구체적인 신고 내역은 각각 관리한다. 신고 이력, 범죄 내용 등을 확인하려면 공문 등 협조 절차를 밟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제는 스토킹 범죄의 성격이다.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옥천에서 벌어진 사건처럼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어도 관할 경찰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신고 내역, 사건 내용 등을 공유하지 못하면 피해자 보호가 어려워진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옥천 사례처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하는 위협이 첫 번째인지 열 번째인지 알 수 없으면 피해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현장 경찰 APO 적응 여부 관건
물론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경찰은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10월 21일에 맞춰 APO(Anti Abuse Police Officer·학대예방경찰관) 시스템을 업데이트했다. 스토킹 피해 신고 이력, 가해자 정보 등을 지역을 넘어 통합 관리하기 위함이다. 스토킹 범죄로 신고가 들어오면 APO에 자동으로 신고 이력이 입력된다. 일선 경찰이 다른 수사 중에 스토킹 정황을 인지해도 APO에 해당 내역을 기록할 수 있다.
다만 일선 경찰들의 APO 시스템 적응에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수도 있다. 기존에 APO 시스템은 학대예방경찰관들만 사용했다. 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익숙한 현장 경찰이 APO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해야 입력을 기반으로 한 이력 관리가 용이해진다. 관심을 갖고 APO 시스템을 조회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피의자의 스토킹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민경 경찰대학 치안대학원 교수는 “현재 APO 시스템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당장 현장에 시스템이 정착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내 지역 사건 처리만 해도 일이 많은 현장 입장에선 다른 지역까지 관심을 두고 챙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옥천=김용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