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요식업 진출 후 잦은 폐업 이어져…사업 성과와 별개로 추징금 납부는 요원
#전재국 씨 일가 사업 살펴보니
전재국 씨는 1989년 출판사 시공사를 설립한 후 출판업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시공사는 한때 매출 500억 원을 넘기는 등 출판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두환 씨 장남의 회사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공사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전재국 씨는 2018년 시공사를 바이오스마트에 매각했다.
전재국 씨 일가는 출판사 음악세계를 통해 출판업계와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세계의 전신은 2018년 9월 설립된 부동산 업체 티에이치디앤씨였다. 티에이치디앤씨는 2019년 10월 사명을 음악세계로 변경하고, 사업목적에 ‘도서 제조 출판업’과 ‘프랜차이즈업’을 추가했다. 전재국 씨 장남 전우석 씨는 2019년 10월 음악세계 사내이사에 취임했고, 올해 3월에는 전재국 씨 장녀 전수현 씨가 음악세계 감사로 취임했다.
도서 유통업체 북플러스도 전재국 씨 영향력 아래 있다. 전재국 씨는 과거 북플러스 최대주주였지만 2013년 추징금 납부를 위해 북플러스 지분을 매각했다. 이후 2019년, 전 씨가 북플러스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다시 북플러스 대주주로 올라섰다. 전 씨는 2019년 10월 북플러스 대표이사로 취임해 직접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밖에 전 씨는 서점 운영업체 리브로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전재국 씨 일가는 요식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 씨는 2019년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 북카페를 오픈했다. 평창동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아내),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이 거주하는 서울시 대표적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단독] 전두환 장남 전재국, 평창동에 북카페 오픈 내막…출판업 재기 노리나?).
앞서 2016년, 전재국 씨는 프랜차이즈 고깃집 ‘나르는돼지’를 오픈했다. 전 씨는 경기도 고양시에 나르는돼지 본점을 개업한 후 서울시 은평구, 경기도 의정부시, 전라북도 전주시 등에 분점을 열었다. 분점은 모두 직영 형태로 운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았는지 나르는돼지는 2020년 폐업했다.
나르는돼지의 운영법인명은 ‘실버밸리’였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장남 전우석 씨가 올해 4월 실버밸리 사내이사로 취임했고, 전수현 씨는 감사로 취임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실버밸리에서 나르는돼지로 사명을 변경했고, 사업목적도 일부 수정했다. 기존 사업목적인 ‘프랜차이즈업’ ‘음식점업’ 등을 삭제하고, ‘과일, 채소 도소매업’ ‘축산물 수입업’ ‘소금, 와사비 식품 수입업’ ‘공산품 수입업’ 등을 추가했다.
그런데 지난 5월, 나르는돼지의 이전 사명과 같은 법인 ‘실버밸리’가 신설됐다. 실버밸리는 전우석·전수현 씨가 이사를 맡고 있는 등 나르는돼지와 이사진 구성이 같고, 사업목적도 동일하다. 실버밸리는 현재 인터넷 쇼핑몰 ‘행복한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행복한과일가게는 과일, 반찬, 주방용품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대표이사는 정 아무개 음악세계 대표와 동일 인물이다. 나르는돼지가 폐업한 후 기존 법인으로 행복한과일가게를 오픈하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행복한과일가게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전우석 씨는 2019년 개인적으로 서울시 강남구에 주점을 오픈한 바 있다. 해당 주점은 중국식 요리와 술을 주로 판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 역시 2020년 폐업했고, 현재 그 위치에는 다른 고깃집이 입주해 있다. 이처럼 전재국 씨 일가의 요식업 사업은 현재 운영 중인 북카페와 올해 설립한 행복한과일가게를 제외하면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추징금은요?
고 전두환 씨의 남은 추징금 약 956억 원이다. 전재국 씨는 2013년 9월 기자회견에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앞으로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음악세계와 실버밸리는 경기도 파주시 한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해당 건물은 전재국 씨 소유로 음악세계·실버밸리가 전세 혹은 월세로 입주해있는 셈이다. 부동산등기부에 전세 관련 기록이 없어 두 회사가 전 씨에게 얼마의 임대료를 지불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 씨가 두 회사에 무상으로 사무실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전재국 씨가 성강문화재단의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성강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1985년 설립된 문화재단이지만 세간에 알려진 활동은 거의 없다. 성강문화재단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은 고 전두환 씨의 장인 고 이규동 씨다. 이규동 씨가 2001년 사망한 후에는 아들 이창석 씨가 이사장을 이어받았고, 2014년 6월부터는 전재국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성강문화재단이 전재국 씨의 사업을 지원한 후 대출 이자를 통해 수익을 올렸다는 의혹도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리브로는 성강문화재단으로부터 30억 99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자율은 6.40%로 리브로가 우리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액의 이자율(5.93%)보다 높게 책정됐다. 심지어 2011년에는 리브로가 성강문화재단으로부터 최고 이자율 9.0%에 돈을 빌리기도 했다. 또 성강문화재단이 단기지원금 명목으로 실버밸리에 6955만 원을 대여한 기록도 확인된다.
전재국 씨의 사업 현황이나 임대료 수령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으로 추징금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추징금은 가족 등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전재국 씨가 성강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면 전 씨 개인이 보유한 현금은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성강문화재단의 위법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측은 “비영리법인인 성강문화재단은 관련 법상 정관 외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데 대금업이 정관에 없음에도 대금업을 지속해왔다”며 “고깃집 창업까지 자금이 흘러간 정황이 포착됐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 혹은 탈법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전두환 씨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 납부를 촉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전재국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행복한과일가게에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은 직원은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전재국 씨와 통화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따로 연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