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스토리부터 엉성한 만듦새까지…‘오겜’ ‘지옥’에 화제성 뺏기고 제작사 주가도 폭락
기대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일까. tvN 드라마 ‘지리산’이 12월 12일 막을 내린 이후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리뷰에는 보는 이들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만 이번에 쏟아진 냉정한 평가는 이례적이다.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PD, 전지현과 주지훈의 만남이라는 사실이 무색한 퇴장이다.
제작비 300억 원을 투입한 ‘지리산’은 2021년 방송가 최대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제작진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값과 제작 규모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10월 23일 첫 방송부터 어색한 CG(컴퓨터그래픽) 등 엉성한 만듦새로 기대가 하락했고,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간접광고(PPL)와 배경음악(OST) 삽입도 지적받았다.
초반부터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제작진은 마지막까지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16부작 중 시청률 10%는 단 한 번 넘겼다. 10월 24일 방송한 2회 시청률 10.7%(닐슨코리아)가 최고 기록으로 남았다. 줄곧 7~8%대를 유지해오다, 최종회인 12일 9.2%로 막을 내렸다. 이야기와 캐릭터 등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드라마 시장에서 더는 작가나 배우의 이름값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시청자 기대 저버린 ‘스토리’
대체 무엇이 시청자를 실망하게 했을까. ‘지리산’은 내적, 외적으로 성공 조건을 갖추고 출발한 드라마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성공의 주역 김은희 작가, KBS 2TV ‘태양의 후예’와 tvN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PD의 첫 만남은 기대를 키웠다. 여기에 전지현과 주지훈은 물론 성동일, 오정세, 조한철 등 쟁쟁한 배우들도 대거 참여했다. ‘토‧일 밤 9시 tvN’ 편성은 제작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프라임 타임이기도 하다.
화려한 조건에도 정작 시청자를 매료시킬 ‘스토리’가 없었다는 사실은 패착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드라마는 1회부터 16회까지 지리산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범인 찾기에만 몰두했다. 과거 실력 있는 레인저였지만 다리를 다쳐 지금은 휠체어에 앉은 전지현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을 한 명씩 살인범으로 의심해 추적하다가 이내 의심을 풀고 다른 이를 의심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정작 산에서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의 활약을 보고 싶던 시청자들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돈 서사 탓에 그나마 작품을 보던 시청자마저 ‘지리산에서 하산한다’는 말을 남기고 흩어졌다.
김은희 작가는 ‘지리산’을 시작하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는 지리산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고 밝혔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의 원과 한이 켜켜이 쌓여있는 땅이다. 그런 곳이라면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지리산의 매력에 빠졌지만, 그 마음을 드라마를 통해 표현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전지현‧주지훈 ‘시청률 보증수표’ 균열
‘지리산’은 톱스타의 출연이 곧 드라마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줬다. 최근 새로운 얼굴을 기용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 KBS 2TV ‘연모’ 등 드라마가 연이어 성공하는 상황에서 일부 톱스타에 붙었던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수식어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전지현과 주지훈의 ‘지리산’ 편당 출연료는 2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업계 최고 수준이다. 물론 ‘지리산’의 제작비가 300억 원대로 책정될 수 있던 이유, 프라임 타임 편성은 물론 각종 브랜드의 PPL 참여가 가능한 이유는 이들 배우의 존재가 결정적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한 지금, 이들에게 이번 드라마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차기작 선택에 있어서 어려운 숙제에 직면했다.
전지현은 2014년 중국 한류를 재점화한 SBS ‘별에서 온 그대’의 성공이 말해주듯 로맨틱 코미디 강자로 통했다. 이번 ‘지리산’에선 분위기를 바꿔 사명감 짙은 캐릭터에 도전했지만 시청자의 평가는 냉담했다. 특유의 화려하고 유쾌한 매력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다, 특히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한 등산복과 콜라겐 등 PPL 브랜드가 전지현이 모델을 맡은 제품들과 자동 연결돼 반감을 키웠다. 방송 초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책임자인 이응복 PD나 김은희 작가가 아닌 주인공 전지현에게 쏟아진 다소 억울한 상황마저 연출됐다.
주지훈은 김은희 작가와 ‘킹덤’ 시리즈 2편에 이어 이번 ‘지리산’으로 다시 호흡을 맞췄지만 원하는 성과는 얻지 못했다. 전지현이 살인범을 찾아 동분서주할 때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만 있는 장면으로 등장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일 기회조차 없었다. 게다가 제작진은 산악 촬영의 어려움으로 지리산 장면은 주로 세트에서 진행했다. 웅장한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주지훈의 모습을 원한 시청자의 기대는 또다시 비껴갔다.
#OTT 효과 저조, 화제성 대결에서 밀려
‘지리산’이 방송하는 동안 글로벌 시장을 석권한 한국 드라마들이 연이어 탄생했다. 이정재 주연의 ‘오징어 게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지옥’ 등이다. 모두 넷플릭스가 투자한 작품들로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같은 기간 ‘지리산’은 화제성에서도 완벽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은 CJ 계열의 티빙에서 공개됐다.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한 넷플릭스, 웨이브와 달리 올해 들어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티빙은 여타 OTT에 비해 가입자 수가 현저히 적다. 그만큼 티빙을 통한 ‘지리산’의 확산세는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본방송과 넷플릭스 공개를 동시에 진행해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 시너지를 발휘한 ‘사랑의 불시착’, ‘사이코지만 괜찮아’, ‘빈센조’ 등과 비교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지리산’은 기획 단계에서 중국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OTT 아이치이와 계약을 맺고, 200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유치했다. 여기에 국내 방영권 판매, PPL 등으로 300억 원대 제작비를 일찌감치 회수했다.
하지만 꼭 돈을 벌었다고도 할 수 없다. 주식 시장의 반응이 ‘지리산’의 현실을 대변한다. ‘지리산’ 1, 2회 방송 후 첫 주식 거래일인 10월 25일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주가는 전날보다 19.8% 하락한 3만 9750원에 마감했다. 3, 4회 방송 직후인 11월 1일에도 전날보다 13.7% 떨어진 3만 3250원에 장을 마쳤다. 종영 이후엔 상황이 더 심각하다. 16일 주가는 2만 2550원을 기록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