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기술력’ 위기 때 더 반짝반짝
▲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때 역경을 맞았지만 올 들어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제이티 유홍준 대표. 오른쪽 사진은 유 대표가 세계 첫 개발에 성공한 비메모리 검사장비 ‘LSI테스트 핸들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1981년 유홍준 대표와 반도체 자동화 장비와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독학으로 주경야독을 한 지 1년여 만에 장비 하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3년가량 고생을 하니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고 앞으로 나갈 길이 보였단다. 1986년 자동화장비 개발팀장을 끝으로 삼성전자를 나온 그는 반도체 장비업체에서 개발부장과 공장장으로 일하다 1990년 독립한다.
“처음엔 외국 장비를 국내에 들여오는 걸 통해 자금을 만들고 창업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돈도 없이 본격적으로 창업을 했죠. 기술하고 인맥이 있으니 그동안 주문생산 방식인 오더메이드로 특수 장비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1996년 삼성으로부터 열검사 장비를 의뢰받았고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사세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메모리반도체 열검사 장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번인소터(Burn-In Sorter) 탄생의 순간이었다. 1997년 장영실상도 수상했고 그간 20억 원이 채 안 되던 연 매출이 단숨에 100억 원 가까이 올라서는 등 번인소터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힘으로 지난 2006년 10월 코스닥에 상장도 할 수 있었다.
지난 2008년까지, 제이티는 창업 후 18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는 제이티와 유 대표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2009년과 2010년 2년간 적자에 빠진 것이다. 메이저 반도체 회사들의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으니 장비 회사가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술개발 투자는 계속됐다. 직원의 65% 이상을 연구분야에 투입하고 있는 제이티의 기술력은 위기에 빛을 발했다.
“메모리 반도체 장비와 비메모리 장비는 많이 달라요. 번인소터 등 그동안 우리는 메모리 쪽 장비를 생산해왔죠. 그런데 2008년 삼성에서 비메모리 검사장비 개발을 의뢰해왔어요. 기왕에 수량이 많이 나오는 걸 하자며 개발에 들어갔죠. 무진장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도 해야 했습니다. 삼성이 우리와 일본회사를 경쟁시켰기 때문이었죠. 결국 성능과 가격 모두에서 우리가 일본 업체를 이겼습니다. 불경기에 그런 일을 하게 되니까 적자의 요인이기도 했지만 미래를 보고선 투자를 안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게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16개 비메모리 반도체 소자 불량 여부를 한 번에 검사하고 선별하는 ‘16파라(para) LSI테스트 핸들러’다. 개발과 상용화 모두 세계 최초였다. 제이티는 지난해 이 장비로 1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 들어선 삼성전자와 106억 원대 장비공급 계약을 맺는 등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해 올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처럼 제이티는 1998년부터 삼성전자의 정식 협력업체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중소기업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 비결은 뭘까.
“서로 간의 믿음이죠. 제가 삼성 출신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삼성이 우리 기술을 인정하고 우리는 삼성이 채택하는 방법을 인정하면서 서로 도와서 득이 될 수 있게 공동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제이티는 기존의 번인소터와 성장 가능성이 큰 비메모리 쪽에 더욱 집중, LSI 핸들러 외관 검사장비를 아우르는 반도체와 LED 태양광 등 장르를 10가지 이상 늘려 사업을 키울 계획이다. 반도체 사업 특성상 기복을 없애기 위한 다변화 전략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지능형교통시스템업체인 세인시스템(대표 박종서)을 합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위기와 극복 과정은 유 대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엔지니어로서만 머물렀던 것 같아요. 경영자는 기업을 지키고 키워나가야 하는데 말이죠. 대기업 같았으면 경영인을 교체하면 되겠죠. 하지만 내가 나를 자를 순 없으니까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기본으로 돌아가자,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처럼 기술을 파는 회사는 성공하는 사람을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1억 원이라는 상금을 내걸고 이노베이터상도 제정했죠. 또한 회사가 지속가능하도록 시스템화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와보면 회사가 아마 확 바뀌어 있을 겁니다.”
유 대표는 이 같은 혁신을 위해 강의실을 만드는 등 제이티 사옥 리모델링에도 착수했다. 임직원들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가 말하는 제이티의 비전은 “큰 회사, 즉 반도체 장비업체로서 한 획을 긋는 회사”다. 내년 목표인 매출 1000억 원 달성은 비전으로 가는 발판이다. ‘확 바뀔’ 내년 제이티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천안=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