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g 체중 감량 영향, 대역은 아냐” 한목소리…경제 실패로 인한 고통 분담 차원 ‘살까기’란 말도
김정은은 2021년 세계 정치인 검색량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독일 통계조사기관 스테티스타에 따르면 김정은 이름은 월 평균 190만 회 검색됐다. 1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차지했고, 2위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였다. 그 다음이 김정은이다. 온라인상에서 김정은에 대한 범세계적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김정은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김정은 연관 검색어는 체중감량이었다. 김정은은 6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 급격히 살이 빠진 얼굴로 등장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10월 국정감사에선 국정원이 김정이 140kg에서 20kg가량 감량했다고 브리핑했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6월부터 김정은 체중감량 검색어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갑작스런 다이어트로 외형상 변화가 생기자, 일각에선 ‘대역설’을 제기했다. 공개활동을 하는 김정은은 실제 김정은이 아닌 대역이라는 내용이다. 10월 국정원은 “김정은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대역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12월 17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10주기 추모대회에 등장한 김정은 얼굴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면서 대역설은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이날 김정은은 더욱 수척해진 얼굴과 선명하게 드러난 팔자주름, 전과 비교해 어두워진 혈색을 보였다. 다시 한 번 변화가 생긴 김정은 외형은 ‘대역설’과 더불어 잠잠했던 ‘건강이상설’까지 소환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2020년 4월부터 건강상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점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일명 살까기라는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최근엔 혈색이 어두워지고 급격한 노화가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월 17일 모습에 대해선 추운 날씨와 ‘김정일 10주기’라는 행사 특성상 수척한 얼굴이 더욱 부각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을 둘러싼 대역설과 건강이상설이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대북 소식통을 비롯한 북한 전문가들은 ‘대역설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잇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대역설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기엔 좋은 주제이지만, 실체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만약 자신을 대체할 대역을 쓴다면, 이른바 ‘최고 존엄’이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한 경호 체계 변화가 먼저 감지돼야 한다”면서 “김정은과 대역 모두에게 최고 존엄에 해당하는 경호를 붙여야 하는데, 경호 인력의 분배와 관련한 유의미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대역설이 설득력을 잃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직 정보 당국 관계자 역시 “대역설은 낭설”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김정은 동향을 파악할 때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가 이목구비의 입체도와 거리감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방식을 통해 김정은의 체중 감량 정도가 몇 kg 정도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사진과 영상을 분석해 그의 신원을 증명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며, 이런 데이터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각각 수집하기 때문에 각국 정보 당국은 김정은 대역설 진위를 판단할 데이터를 충분히 갖고 있다”면서 “대역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국정원 브리핑도 이런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2021년엔 외교적으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내부적인 경제 활성화 등 이슈가 많았던 까닭에 김정은의 외교적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런 부분이 김정은 신변잡기로 스포트라이트를 옮겨버린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1년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외교 안건보다 내부 경제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대유행(Pandemic·팬데믹) 여파로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장마당 경제’가 위축됐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북한은 강력하면서도 폐쇄적인 방역 정책을 시행했다. 국경 폐쇄와 코로나19 관련 강력한 폐쇄 조치들이 잇따르면서 북한 경제가 사면초가에 놓였고, 김정은은 경제 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애민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살리기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도부가 추진하는 경제 살리기 정책이 첨단 산업보다는 의류, 잡화, 식품 등 국제경제 대세와 동떨어진 부분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까닭이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2018년 김정은이 원산 구두공장을 찾아 ‘구두 접착제’ 접착력이 강화된 것을 격려했다. 국가 지도자가 이런 소소한 기술에 대해 따로 격려를 하며 모범사례로까지 선정했다”면서 “2018년에도 북한 경제는 신발 접착제에서 희망을 찾을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2021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국경폐쇄가 길어지면서 더욱 힘든 국면을 맞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라는 변수로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가 강력한 대북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국경을 통한 밀무역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밀무역을 토대로 한 장마당 경제가 완전히 말랐다. 돈이 들어올 외부 통로가 전부 차단된 상황에서 지도부가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사실상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름없다.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애민주의’ 프레임으로 대외 선전에만 힘쓰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2016년부터 북한 경제 상황은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2016년 북한 경제규모는 3.9% 커지면서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마이너스(–) 3.5%, –4.1%를 기록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 여파로 성장세가 꺾였다. 2019년 0.4%로 제자리걸음한 북한 경제성장률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4.5% 추락했다. 2021년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이 유력한 상황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스콧 스나이더 미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김정은 정권을 평가하면서 경제를 가장 큰 실패로 꼽았다. ‘김정은 집권 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스나이더 국장은 “북한의 개방 없는 개혁이란 경제 정책은 군사력 강화에 따른 대북제재와 내수 위축, 코로나19 및 자연재해 등이 맞물리면서 차질을 빚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혈색만큼이나 북한 내부 사회 활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국경이 폐쇄되면서 북한의 대내외적 활동은 눈에 띄게 굼떠졌다”면서 “국경 폐쇄 이후엔 북한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유의미한 정보의 양도 급감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내부적인 경제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겠다는 취지로 다이어트를 감행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체중감량과 어두워진 혈색 자체가 경제 정책 일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