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바위 전설’ 인왕산, ‘관악산 서쪽 끝’ 호암산, ‘고려대 인근’ 개운산에서 호랑이 기운 듬뿍!
2022년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검은색을 뜻하는 임(壬)자가 호랑이 인(寅)자와 만나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하기도 한다. 한반도 전역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서울에도 호랑이 전설이 깃든 명소들이 있다. 올해는 이곳들이 곧 일출명소다. 서울관광재단이 추천하는 ‘2022 호랑이 기운 솟아나는 서울 해돋이 명소’ 3곳을 소개한다. 누구에게나 호랑이 기운이 절실한 요즘, 새해 첫날 호랑이 기운 받으며 시작해볼까.
#한양 우백호, 인왕산 범바위
조선은 도성 한양을 건설할 때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다. 도성을 수호하는 산으로 여겨 왕의 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인왕산은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바위산의 형태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이 호랑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옛날부터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많았다.
전설에 따르면 주민들이 인왕산에 사는 호랑이 때문에 해가 저물면 문밖도 나서지 못했다. 이에 한 고을의 군수가 호랑이를 잡겠다고 나섰다. 군수는 늙은 스님의 형상을 하고 있던 호랑이를 불러 압록강 건너로 떠나라고 말했다. 군수가 스님에게 본 모습을 보이라고 하자 집채만 한 호랑이로 변해 서울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전설은 현재 금색 호랑이 동상으로 분해 있다. 황학정 지나 인왕산 올라오는 길에 만날 수 있다.
인왕산은 가깝고 편해서 일출 산행지로도 좋다. 일출 산행은 보통 어둠 속에서 길을 나서야 해 어렵게 느껴지지만, 인왕산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출발하면 일출을 볼 수 있는 범바위까지 20분만 걸으면 된다. 범바위까지만 가도 멋진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으니 뭔가 거저 얻는 기분이다.
인왕산은 바위산이지만 한양도성길을 따라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 초보도 오르기 편하다. 일출 시간이 되면 멀리 산 너머에서 해가 떠오른다. 눈앞에 보이는 N서울타워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아래로는 광화문과 을지로 일대의 고층 빌딩이 빛을 머금는다.
#태조 이성계의 호암산
호암산은 관악산 서쪽 끝에 있다. 해발 393m의 야트막한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천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움직이는 것 같은 형세이며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가 있어 호암(虎巖)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호암산 정상에서 관악산 너머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 관악산 능선에서 해가 떠오르는데 보통 일출 예정 시간보다 10분 정도 지나면 해돋이를 볼 수 있다. 해발고도가 낮아 화려한 일출은 아니지만 호암사 뒤편으로 이어진 비교적 짧은 등산코스를 통해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상까지 가려면 호암산 중턱의 호압사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편하다.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정상으로 가는 길과 호암산성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상을 향해 길을 잡아야 한다. 암반 구간을 지나면 태극기 펄럭이는 호암산의 정상 민주동산 국기봉이 나온다.
내려오는 길엔 호압사에 들러보자. 호압사 창건 유래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호랑이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초 어느 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문득 어둠 속에서 몸의 반은 호랑이, 나머지 반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그날 밤 태조가 상심하며 침실에 들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한양은 좋은 도읍지로다”라며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노인은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 하니 산봉우리 밑에 사찰을 지으면 그 기운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태조가 무학대사에게 호압사를 창건하게 하고 결국 궁궐을 완성했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전설이다.
#호랑이 살던 개운산
개운산은 성북구 중심에 있다. 안암동, 종암동, 돈암동을 잇는다. 해발 134m로 야트막하지만 산 전체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한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호랑이가 사는 산이라 불렸다. 개운산 자락에는 고려대학교가 있다. 고려대가 호랑이를 상징 동물로 삼으면서 고려대 학생들을 안암골 호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운산도 오르기 어렵지 않다. 입구부터 마로니에 마당까지 1km 구간이 ‘무장애 길’이다. 무장애 길은 장애인과 노약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평탄하게 만든 길이다. 개운산은 따로 정상이랄 게 없는 동네 뒷산이지만 이곳에서 쉽게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성북구의회 위쪽 높은 지대에 조성된 운동장에서 아파트 단지 뒤로 길게 늘어선 능선에서 해가 떠오른다.
일출을 본 뒤엔 잠시 야외 독서도 즐길 수 있다. 성북구의회를 지나 산책로 안으로 들어서면 ‘산마루 북카페’가 있다. 산림욕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숲속 야외 도서관이다. 야외에 놓인 의자와 평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잠시 쉬어가기 좋다.
하산 길에는 산자락에 있는 개운사에 들러보자. 개운사는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동대문 5리 밖에 지은 절이다. 당시에는 영도사라 불렸다. 조선 후기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영도사에서 자랐는데, 왕위에 오른 뒤 ‘운명을 여는 사찰’이라는 의미의 개운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22년 새 운명을 열고 싶은 사람에겐 상징적인 걸음이 될 수도 있겠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