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쩍·뻥튀기 지적 후 ‘이행’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과거 수차례 편법 경영 논란이 일 때 계열사에 재산을 내놓았다. 지난 1998년 대한텔레콤(현 SK C&C) 저가 매입 의혹이 대두되자 그는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보유 지분 30%를 SK텔레콤에 증여했다. 2002년 말에는 JP모건과 옵션계약으로 1060억 원의 손실을 본 SK증권에 SK C&C 주식 4만 5000주와 SK증권 주식 808만 4000주 등 4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출연했다.
최 회장은 사재 출연 약속을 즉시 이행하지 않아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지난 2003년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및 1조 90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업무상배임)로 기소돼 서울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최 회장은 “채권단에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그중 워커힐 주식 40.8% 등을 SK네트웍스 정상화를 위해 출연하겠다”며 사회 환원 의지를 피력했고, 덕분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약속 이행은 자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영 사정이 안정된 이후로도 사재 출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최 회장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고, 2007년에서야 자신이 갖고 있던 1200억 원 상당의 워커힐 주식 전부(325만 5598주)를 워크아웃 중이던 SK네트웍스에 무상으로 출연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사재 출연 금액을 ‘뻥튀기’했다가 바로잡은 케이스다. 김 회장은 지난 2009년 10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특별사면을 받았다. 당시 김 회장은 자금난을 겪고 있던 동부하이텍을 살리기 위해 사재 3500억 원을 출연해 동부하이텍 자회사인 동부메탈 지분 49.5%(1485만 주)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 그는 자신이 설립한 1인 주주회사 동부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동부메탈 주식 1185만 주(2844억 원)를 사들였고, 나머지 300만 주는 동부정밀화학이 720억 원을 들여 매입했다. 동부그룹은 당초 동부정밀화학이 인수한 금액까지 김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분류했다가 논란이 일자 김 회장 개인의 출연은 아니라고 뒤늦게 정정했고, 그 규모가 당초 약속보다 적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로써 사재출연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7년 보복 폭행으로 법정에 섰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었다. 김 회장은 법무부 보호관찰소에서 정한 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일주일에 3~4일씩 하루 9시간을 봉사하며 2개월 만에 명령을 완료했다.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한 김 회장은 “내 자신을 버리고 나를 낮추어 성숙된 자아를 찾아가는 성찰의 여행이었다”고 밝히며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약속했다. 이후 김 회장은 2008년 가을 충북 청원군 복지시설에서 송편을 빚는 등 틈나는 대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한화그룹 임직원들도 무료급식, ‘사랑의 집수리’, 현충원 봉사를 통해 사회 공헌에 힘쓰고 있다.
한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법처리된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들 기업 총수들은 특경법상 배임, 업무상배임, 폭행 등 죄질이 중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모두 사면 받았다”면서 “나라의 독립을 기리는 광복절이 비리 기업인들의 특별사면을 위한 날로 변질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촌평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