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쇼핑 부추기는 구조에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 부담…‘비급여’ 남용 막을 제도 마련 시급
가입자가 3900만 명을 넘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 보험료 새해 인상률은 평균 14.2% 수준이다. 지난 4년(2017~2020년) 동안 평균치 13.4%를 웃돈다. 5년 만에 갱신 주기를 맞는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는 누적된 인상률이 적용돼 보험료가 많게는 2배 이상 오를 수도 있다.
1세대 실손보험은 2009년 9월까지 판매됐다. '구 실손보험'으로 불리며 자기부담금 없이 해외 치료비까지 보장해 보장범위가 가장 넓다. 갱신주기는 3~5년이다. 2세대는 10~20%의 자기부담금이 도입됐다. 2009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됐고 갱신주기는 3년이다. 1·2세대 가입자만 약 2700만 명이다.
3세대는 2017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공급됐다. 3대 비급여(도수·주사·MRI)에 대해 자기부담금이 30%다. 한도가 없어 청구금액이 많을수록 부담이 커진다. 2021년부터 팔린 4세대는 급여 20%, 비급여 30%의 자기주부담금이 부과되고, 보험금이 많으면 보험료도 할증되는 구조다. 금융당국은 1·2세대 실손보험을 3·4세대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고 유도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3·4세대 상품은 누가 봐도 1·2세대 상품보다 가입자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4세대 이전 실손보험의 가장 큰 맹점은 개인별이 아닌 모집단의 보험금 청구실적에 따라 보험료가 높아지는 데에 있다. 1~3세대 실손보험 보험료 할증은 가입한 상품의 종류·연령·성별 및 보험사별 손해율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즉 본인은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같은 종류의 상품에 가입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험금을 많이 청구했다면 할증이 많이 되는 셈이다. 보험료가 많이 오른다면, 병원을 더 이용해야 손해를 덜 보는 셈이다. 의료 쇼핑을 부추기는 구조다. 병원들에게는 그야말로 눈먼돈이 되는 셈이다.
도수치료는 정형외과 등의 보편적 서비스 상품이 됐다. 주사도 건강보험 급여보다 더 비싼 비급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어 의료지식이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놔주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비급여가 대부분인 MRI 검사료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어서 부르는 게 값이다.
그 밖에도 병원 현장에 가보면 객관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각종 물리치료들이 마치 반드시 필요한 치료인 양 환자들에게 권유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필라테스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광고까지 할 정도다. 국내에서 영리병원은 허용되고 있지 않지만 실손보험이 일부 병원을 사실상의 장사꾼 소굴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 적자가 2020년 2조 3000억 원 수준에서 2021년에는 3조 원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년 뒤에는 22조 원까지 적자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병원들의 무분별한 비급여 장사를 막으려면 정확한 현상 파악이 중요하다. 병원들의 비급여 청구 형태를 제대로 분석하면 이른바 바가지 서비스와 '돈벌이' 병원들을 가려낼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도입이 주장됐다. 실손보험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보험사 심사 과정까지 감안하면 최소 5단계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이 법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동의하면 의료기관이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입자는 물론 당장 보험금 지급이 더 늘어날 보험사들도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의료정보의 유출과 영리목적 활용이 우려된다는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통과가 좌절됐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실손보험 과잉 청구를 막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비급여 항목을 심사해 적정한 진료인지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을 최근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