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사회적 합의’ 이행 요구…사측 “계약주체는 대리점, 현장실사 하자”
#사회적 합의, 정말 지켜지지 않았나
2021년 1월 정부는 택배노조의 파업 결의 소식이 알려지자 발 빠르게 나섰다. 정부 주도로 택배사업자, 영업점, 소비자단체 등이 모여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었고 같은 해 6월에 최종 사회적 합의문을 타결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사회적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을 맡기지 않는다 △택배기사 보호를 위한 원가 인상분은 170원임을 확인한다 △작업시간은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 등이다.
택배노조가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부속계약서. 택배노조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 등 다른 택배회사들과 달리 CJ대한통운만 ‘부속합의서’를 대리점 측에 요구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부속합의서 내용에는 ‘당일배송 원칙’, ‘주 6일제’ 등이 포함돼 있다.
CJ대한통운 측은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사항은 모두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며 “당일배송 원칙 역시 주 60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속합의서 제2조 2항에는 “수탁자는 본 계약 제9조(일 12시간, 주 60시간)의 작업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담당구역 내 배송해야 할 화물 전부를 당일 배송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고용부는 해당 부속합의서에 대해 “생활물류법이나 관련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봤다”며 “계약서에 충분히 반영 가능한 수준이며 실제 현장에서 당사자 간 협의해 수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실제 현장에서는 사회적 합의문과 부속합의서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손 아무개 씨(28)는 “보통 하루에 400~500개를 배송하는데, 당일배송을 위해 늦게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다”라며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에서 6년간 일했다는 박 아무개 씨(52)는 “분류 작업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분류 기계 작업의 30% 정도가 오류가 생긴다”며 이에 대한 분류는 택배기사의 몫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는 “실제 주 60시간, 일 12시간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근무 시간을) 초과했을 때는 물류 및 배송 구역 조정 등을 통해 조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 요금 인상의 과실을 과도하게 챙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2021년 4월 택배금액을 170원 인상하고, 2022년 1월에는 100원 인상 예정인데도 인상분의 극히 일부만 택배기사에게 배분한다고 주장한다. 택배노조는 인상분 170원 중 56원만 사회적 합의 이행비용으로 사용하고, 그중 70~80원을 CJ대한통운의 영업이익으로 채우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2020년 택배사업 영업이익이 1267억 원이었는데 2021년 추정치가 2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측은 요금 인상분에 따른 영업이익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고 있다. 다만 노조 측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CJ대한통운 한 관계자는 “인터넷에 공시된 자료만 봐도 ‘땅 파서 장사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라며 실제 이윤이 적다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요금인상분은 170원이 아닌 140원이었으며, 4월에 인상한 금액은 6월 사회적 합의 이전에 인상한 금액이기 때문에 합의 내용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구조적인 한계가 상호 불신 키웠다
택배노조의 이번 파업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와 회사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택배회사와 택배노조 사이에는 ‘택배회사 대리점’이 끼어 있다. 택배회사는 대부분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해당 대리점은 택배기사들과 계약을 맺는다.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택배를 운송하게 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계약 주체인 대리점을 빼놓고 개인사업자와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하도급법 위반”이라면서 “애초에 우리는 해당 노조와 대화할 주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아무리 대화를 요청해도 사측이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에서 23년간 일했다는 김 아무개 씨(60)는 “문제를 계속 말해도 대화를 안 해주니까 우리는 방법이 이것(파업)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이에 반발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냈고, 이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당사자 간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가 ‘합의를 위한 합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의 상호불신은 오래전부터 쌓여왔다.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가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몇 년째 유지하며 대화를 거부했고, 택배노조 역시 파업으로 대응해왔다.
이와 관련,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파업의 원인은 ‘디테일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6월 사회적 합의 이후 이를 시행하면서 세부적인 사항 때문에 생겨난 갈등인데, 대화가 부재하니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분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국가에서 명확히 정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이 노조와 사측,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위원이 돼서 세부적인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택배 산업이 전체 물류 산업의 약 10%를 차지하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택배노조는 지난 1월 6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으며, 매주 화, 금 CJ 본사 앞에서 총파업 투쟁을 계속할 예정이다. 파업이 지속되자 CJ대한통운은 “1월 5일 국토교통부에 사회적 합의 이행과 관련해 현장실사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다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