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센터 직원들 정기 회식 해와”…경찰 신고 후 범행, 출동 경찰은 범행 인지 못해 ‘의아’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월 7일 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스포츠센터 대표 한 아무개 씨(41)를 살인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한 씨는 2021년 12월 31일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서대문구의 I 스포츠센터에서 직원 A 씨를 폭행하고 70cm 플라스틱 막대기를 몸속으로 찔러 넣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음주 후 태도에 불만 느껴 폭행” 피의자 변명에 유족 울분
경찰 조사에서 한 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왜 그랬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는다”면서도 “음주 이후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 불만이 쌓였고, 그로 인해 폭행한 뒤 살인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진술했다. A 씨의 유족은 7일 호송차를 타고 떠난 한 씨를 향해 “술은 무슨 술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회식자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I 스포츠센터는 여느 회사와 다를 것 없이 직원들끼리 종종 회식을 하곤 했다. 사건이 발생한 12월이 아닌 다른 달에도 술자리를 겸한 회식이 있었다고 한다. 즉, 두 사람의 술자리는 적어도 두 차례 이상이었으며, 한 씨가 이전에도 술에 취한 A 씨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음주 이후 피해자의 행동에 불만이 쌓였다는 말은 살인의 변명으로 충분하지 않다.
즉, 두 사람의 술자리는 적어도 두 차례 이상이었으며, 한 씨가 이전에도 술에 취한 A 씨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음주 이후 피해자의 행동에 불만이 쌓였다는 말은 살인의 변명으로 충분하지 않다.
I 스포츠센터에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A 씨는 I 스포츠센터의 직원으로 2019년쯤 입사했다.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는 아이들의 체육 수업은 물론 센터 대관업무와 행사 홍보, 채용까지 다양한 일을 도맡아 했고, 최근 과장으로 승진했다. 인터뷰에 응한 강사는 “A 씨의 경우 직접 수업도 하고 강사 채용과 면접 등 인사 업무까지 했다. 내 면접도 A 씨가 봤다. 묵묵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같이 일을 했던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고 했다. 평소 두 사람이 다투거나 고성이 오가는 것을 목격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본 것일 뿐 내밀한 속사정은 알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엽기적인 범행 수법을 두고 일각에서는 성범죄와 마약 투약 의혹이 제기됐지만 특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과 주변조사 결과 대표와 직원 사이에 일상적인 대화만 오갔으며 성범죄를 입증할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계획범죄는 아니며 이상성애 등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약물 간이 검사결과에서도 ‘음성’이 나왔다. 다만 한 씨의 심리 분석을 위해 프로파일러 면담을 진행했고 현재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경찰 오는 중에도 폭행…“핏자국 없어” 돌아간 경찰
도통 이해되지 않는 사건에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7일 언론 브리핑을 열고 당시 정황에 대해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2월 30일 회식 자리엔 한 씨와 A 씨를 포함해 총 4명이 있었으며 640ml 소주 6병과 340ml 캔맥주 4캔을 나눠 마셨다.
무차별 폭행은 동석한 2명이 귀가한 뒤 시작됐다. 폐쇄회로(CC)TV에는 한 씨가 10분 동안 A 씨의 몸을 누르거나 목을 조르는 등의 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A 씨도 발버둥을 치는 등 빠져나오려고 저항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A 씨가 탈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A 씨의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 ‘막대기로 찌른 행위’는 경찰이 오는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 씨는 탈진한 A 씨의 하의를 벗긴 후 엉덩이를 센터 내에 있던 막대기로 수차례 폭행했다. 이후 31일 새벽 2시 13분쯤 112에 전화해 “누나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허위신고를 했다. 경찰은 16분 뒤인 2시 29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그 사이 한 씨는 길이 70cm, 지름 3cm 허들용 막대기를 A 씨의 몸속에 수차례 찔러 넣고 몇 분간 방치하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빼 조명이 없는 어두운 복도로 던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대표가 직원 몸에 막대기를 꽂았다가 바로 뺀 게 아니”라며 “꽂힌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고 설명했다.
한 씨는 출동한 경찰에 “그런 신고를 한 적이 없다” “(폭행한 사람이) 도망갔다”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 6명은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 있는 A 씨를 보고 술에 취해 잠든 것으로 판단, 옆에 있던 옷으로 하의를 가려 준 채 철수했다. 경찰로서는 범행이 벌어진 직후인 현장에 도착하고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 셈이다. 이를 두고 멍과 출혈 등의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 됐으나 경찰은 출동 당시 핏자국 등 범행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고 “술에 취해 자고 있다”는 한 씨의 말을 믿고 돌아갔다고 밝혔다.
한 씨는 그로부터 7시간이 지난 12월 31일 오전 9시가 돼서야 119에 “같이 술을 마신 직원의 몸이 차갑다”며 신고했다. 범행에 사용한 막대기는 신고 전 본인이 수거했으며 수거 이유에 대해서는 “아침에 일어나 센터를 정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음주 여부와는 무관하게 살해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술을 마셔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범행은 별개다. 긴 봉이 몸에 들어가면 사람이 죽는다는 게 팩트다. 기억을 못 할 뿐이지 한 씨가 그 행위를 한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A 씨의 유족은 4일 “장례식장에서 보니 얼굴에 멍이 있었고 검안을 하셨던 분이 엉덩이가 다 터져 있었다고 했다”며 “술 취한 사람이 횡설수설하면서 신고했다고 하는데 그걸 믿고 간 게 안 믿긴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살펴보거나 구급차라도 불러야 했다”고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경찰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진상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감찰조사계는 6일 마포경찰서, 서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 6명에 대한 대면 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청은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되면 정식 감찰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