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잇단 영장 기각·소속 검사 폭행 등 악재 연발…대선 결과에 조직 영향 받을 수밖에
2021년 말부터 불거진 논란들은 공수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기자 등 민간인 통신 조회 논란에 이어 손준성 검사 관련 잇따른 영장 기각, 소속 검사 아내 폭행 논란이 맞물리면서 내부적으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공수처 검사들 전원이 모인 회의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공수처 역시 대선 전까지는 ‘정중동’ 하며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조용하게 맞이해야만 하는 첫돌
2021년 1월 21일 출범한 공수처는 1주년 행사를 외부인사 초청 없이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1월 14일 공수처는 “21일 출범 1주년 행사를 외부인사 초청 없이 김진욱 처장과 차장, 소속 검사 등 28명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간담회 등도 검토했지만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 개혁의 핵심 공약으로 출범했지만, 1년 만에 내외부에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대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관련 4건의 사건을 입건하고도 수사 진척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 사실을 확인한 기자 등 민간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조회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힐 정도로 공수처 수사가 비상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소속 검사가 임신한 아내를 폭행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도 알려지면서 잡음이 보태졌다.
#출범 초반부터 불거진 ‘아쉬움’
공수처는 1호 사건부터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5월, 야심차게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해직 교사 특별채용 의혹 사건을 ‘공제 1호’로 선택했다. 하지만 검찰·법원이 아닌, 서울시교육청의 수장 조희연 교육감은 공수처가 직접 기소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수사 대상 선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12월 말까지 직접 수사할 사건 24건을 입건했지만 자체적으로 기소한 사건은 0건에 불과하다.
정치적 공정성을 내세웠지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부터 잡음이 일었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면서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보내 ‘모셔 온’, 소위 ‘황제 조사 논란’은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김진욱 처장이 해명했지만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후에는, 야당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건을 4건 입건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다가 논란에 직면했다. 2021년 10월 고발사주 의혹 관련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2차례를 연달아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렇다고 검사, 판사의 비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인천지검은 알선뇌물수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의 A 부장판사를 최근 불구속 기소했다. 중학교 동창 사업가로부터 골프채를 수수한 의혹을 받아 최근 대법원에서 징계 처분도 받았는데, 당초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적합한 사건은 A 부장판사 사건이었다는 평이 나온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성윤 검사장이나 이규원 검사 사건은 공수처가 아니라 검찰이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기소까지 하지 않았냐”고 비교했다.
그 과정에서,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이 유출된 과정을 수사하기 위해 기자 수십여 명과 그 가족들까지 통신 조회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수처는 ‘여당’에서조차 당황스러워 하는 분위기까지 몰렸다. 윤석열 대선 후보 고발사주 의혹 수사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단톡방을 특정, 야당 의원 90여 명의 신상정보를 조회했고 윤석열 후보의 팬카페 회원인 가정주부 6명의 신원도 파악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수처에서는 “검찰도, 경찰도 하는 통신 조회”라고 항변했지만, 제대로 된 통신조회 규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법조계 일각에서 공수처장 교체론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당 소식에 밝은 법조인은 “민간인 사찰은 여당이 오랜 기간 문제를 삼았던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 관행”이라며 “수사 능력 부족 비판은 갓 출범한 공수처가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공감해도 민간인 사찰 논란은 반응이 조금 다르다”고 귀띔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1월 3일 조선일보 유튜브에 출연해 “‘이러려고 우리가 이렇게 했던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수처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1월 11일 열린 공수처 검사회의에 참석한 공수처 검사들은 “기존 경찰, 검찰 등이 했다고 해도 공수처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평검사들은 그동안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힘들었던 부분들을 토로하며 ‘지휘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공수처 B 검사가 2019년 임신 중인 아내를 수차례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에 알려졌다. B 검사 측이 “폭행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고 공수처는 “임용 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에서 “B 검사를 직무정지하고 징계하라”는 청원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분위기 쇄신 요원한 게 더 큰 문제
문제는 대선 전까지,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공수처가 수사력을 집중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사주 및 판사사찰 문건작성 사건은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건강이 악화돼 당분간 소환할 수 없다. 대선 전까지 수사를 마무리해, 공수처의 필요성을 입증하려 했던 것이 무산된 셈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결국 대선 결과에 따라 가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관이 공수처가 됐다”며 “지난 1년 동안의 수사 방향이나 결과가 좀 더 긍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