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출신 변호사 등 유력 후보 언급돼 눈길…청와대 재가 여부에도 관심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라인을 담당하는 검사장급을 외부 인사로 채운 적이 없어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된 것도 청와대에서 ‘승인’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당장, 몇몇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변호사들도 검사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상 첫 수사라인에 비 검사 임명 가능성
법무부는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검사장급 경력검사 신규 임용 지원서를 접수한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산업재해·산업안전·노동 분야 전문가 1명을 2월 중에 선발하기 위한 지원자 모집이다. 10년 이상 법조 경력을 갖춘 판사·검사·변호사와 법률학 교수 등이 지원 대상으로, ‘중대재해·산업재해·산업안전·노동 분야 실무 경험 또는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선발 기준도 제시했다.
전례가 없는 검사장급 모집 공고다. 그동안 수사 라인이 아닌 정책 부서나 감찰 파트의 경우 비 검사 출신들이 법무부나 대검찰청 검사장급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순혈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법무부 법무실장·인권국장·출입국외국인본부장·감찰관과 대검 감찰부장에 비 검사 출신을 앉혔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하는 자리에 비 검사 출신이 임명된 적은 전무하다.
임명될 자리도 논란이다. 현재 공석인 자리는 광주고검 차장검사와 대전고검 차장검사, 두 자리다. 법무부 계획대로라면 이 두 자리 가운데 한 자리에 ‘중대재해 전문 검사장’이 임명되게 된다. 하지만 두 자리 모두 지역에 한정돼 사건 처리가 가능하다. 때문에 광주고검이나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임명을 하되, 직제를 개편해 대검에 ‘직무대리’로 근무를 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검사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 모델이다. 이번에 임명될 검사장은 정해진 임기도 없고, 중대재해 관련과 관계없이 인사 때 이동이 가능하다. 광주나 대전의 차장검사로 임명되더라도, 1년 뒤 서울중앙지검장 등으로 이동할 경우 ‘정치, 사회’ 관련 주요 사건 처리를 주도할 수 있다. 결국 검찰 내에 ‘친정권 인사’가 검사장으로 들어와 정치권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정유미 광주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게시한 글을 통해 “광주에 대규모 건설재해가 연달아 두 번이나 발생해서 마음이 아픈데 이 비극을 기회로 삼아 엉뚱한 인사를 검찰에 알박기하려는 시도는 아닐 텐데, 그런 시도라면 너무 사악하다”고 글을 올렸다.
한 간부급 검사 역시 “중대재해 수사 전문가는 ‘수사’를 해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에서 임명할 수 없다면 최소 변호사 경력이 있는 경찰 출신을 꼽아야 조금은 이해라도 할 텐데 민변 출신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다. 변호를 하다 보면 재해도 다룰 수 있겠지만 수사와 변호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실제 인사로까지 이어질 경우, 검사들의 성토는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 사건을 별도로 떼서 대검에서 수사 지휘하는 모델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라며 “그렇다고 해서 수사 성과가 더 있을 수 있겠냐? 성범죄 사건처럼 일선 청마다 신속하게 수사하고 구속영장 청구 등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사를 하라고 지시하면 될 것을 왜 ‘검사장 인사’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했는지 확인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말도 안 된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지적이다.
#벌써부터 거론되는 민변 출신 변호사들
하지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반발과 관계없이 인사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독일에서 귀국한 뒤 언론 등에 인사 계획을 거듭 밝히고 있다. 1월 17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검검사급 인사는 한 자리에 한해 진행할 예정”이라며 “산업재해와 노동 인권에 식견이 높은 외부 인사를 발탁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검사장 내부 승진 두 자리에서 검사장 외부 승진 한 자리로 바뀌어버린 인사 구도에 발맞춰, 자연스레 유력 후보군들이 거론되고 있다. 벌써부터 민변 출신 변호사 등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그동안 법무부 주요 보직에 민변 출신들이 대거 임명된 탓에, 정권 말 ‘내 사람 챙기기 인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검찰 간부는 “18일 오전부터 갑자기 특정 후보군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어느 정도 후보군들이 추려진 것은 이미 제안이 갔다는 것 아니겠냐”라고 풀이했다.
#청와대와 소통 완료?
이번 인사를 놓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 주도의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1년 말,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2명 검사장 내부 승진 인사 추진을 밝혔지만 청와대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이를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청와대 설득을 거쳐 인사 규모와 방식 등이 결론이 났다’는 게 중론이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2차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김영식 전 대통령 법무비서관(사법연수원 30기)이 신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점 등은 ‘외부 출신 검사장 임명’이 이미 청와대의 재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을 보탠다.
앞선 간부급 검사는 “청와대의 승인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임 민정수석이 임명된 상황에서 추진되는 인사라면 이미 소통이 끝나지 않았겠냐”라며 “신현수 전 민정수석 때 법무부와 청와대 간 검찰 고위간부 인사 조율과정에서 민정수석 패싱 논란이 불거져 물러나기도 했기 때문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은 실제 검사장 인사가 발표가 날 경우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민변 변호사들 가운데에는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 있거나 정치 관련 경력이 있는 인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프로스 등 내부망에 인사에 대한 반발이나 비판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