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마지막 인사 ‘보은 위한 명분 쌓기’ 수군…‘이제 와 빈자리 채우나’ 청와대도 불편한 기색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사장을 줄이겠다며 문재인 정부 초부터 일부 고검 차장 보직을 공석으로 뒀던 것을 공식화하더니, 이제 와서 ‘빈자리 채우기’에 나서는 것은 보은 인사를 위한 ‘억지 명분’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예상 밖’ 발언으로 검사장 인사 술렁
대통령 선거를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사장(대검 검사)급 승진 인사를 예고했다. 2021년 말부터 ‘소폭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박범계 장관은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공석인 광주고검과 대전고검 차장검사를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당초 예상과도 맞물리는 발언이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검찰 내에서 승진하지 못했던 친정부 성향의 검사들을 위한 마지막 보은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소폭 승진 인사는 논란을 최소화하기 좋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박범계 장관은 1월 5일 “대검 검사급(검사장급) 인사는 아주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현직 검사장, 고검장들에 대한 ‘사퇴 압박’도 가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탰다.
기존 검사장급 검사들 중 사퇴 의사를 밝히는 이가 아직 등장하지 않으면서 현재 가능한 인사 규모는 두 자리 안팎이다. 승진 대상자인 사법연수원 28~30기 사이의 검사들 중 몇몇 검사들의 이름이 유력 후보군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는 박은정 수원지검 성남지청장(29기)과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30기)가 초반부터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박 지청장은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감찰을 주도했던 인물로, 이종근 서울서부지검장(검사장)과 부부 사이다. 함께 거론되는 김태훈 4차장검사도 유력한 후보다. 다만 대장동 의혹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도중 잡음이 발생한 점이나 수사가 미진하다는 비판을 받는 점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범계 장관 역시 ‘예상 밖’ 발언으로 검사장 인사를 더욱 술렁이게 만들었다. ‘중대재해 전문성’을 언급한 것. 박 장관은 “중대재해 관련 전문성을 갖고 있고 관심이 높은 우수 자원을 뽑겠다”고 밝혔다. 1월 27일부터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만큼 관련 전문가를 발탁하겠다고 강조한 것인데, 28~30기 사이에는 중대재해 전문가라고 볼 만한 검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현 서울고검 형사부장(28기)과 진재선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30기) 등 노동 사건에 정통한 공안통 검사들이 새롭게 검사장 승진 유력 후보군에 거론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 다 공안통으로 이번 정부에서 선거-공안의 요직을 주로 섭렵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진 차장검사는 현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법무부 형사기획과장, 검찰과장, 정책기획단장 등 요직을 섭렵했고, 2020년에는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을 맡으면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의 공소 유지를 지휘한 점 등이 ‘재해 수사 전문가’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검사장 신규 승진 배제 가능성도
인사 추진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검사장 축소 및 법무부 탈 검찰화를 목표로 검사장이 맡던 일부 고검 차장검사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가장 ‘하는 일이 없는 자리’라는 고검 차장검사를 임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검찰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마지막 2개월 앞두고, 빈자리를 채우면서까지 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선거를 앞두고 기존 고검장, 검사장은 물론, 승진을 앞둔 검사들조차도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텐데 마지막에 승진 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알박기’를 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원래 정부의 인사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 사건은 공안이나 형사부 경험이 많은 검사라면 누구나 잘 소화할 수 있는데 별도로 ‘중대재해 전문가’라고 언급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직 부장검사 역시 “28기부터 30기 중에 중대재해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가 있나”라며 “형사부 근무 경험이 있거나 과거에 노동 및 기업 사고 관련 사건을 한 건이라도 해봤으면 중대재해 전문가가 되는 것이냐. 그냥 보은 인사를 위한 명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에서도 박범계 장관의 인사 추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는 게 공공연한 후문이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박 장관의 소규모 승진 및 인사 추진에 대해 ‘시점 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의견을 내려 보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선거 후 들어서게 될 정부에서 인사를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는 지적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1월 말 단행될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신규 승진은 배제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독일을 방문 중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귀국하면 청와대와 더 의견을 공유하겠지만, 청와대에서 가이드라인이 내려온 만큼 이를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검사장 내에서 인사이동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전국 최대 규모 청인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이정수 현 지검장이 취임한 지 7개월에 불과하고, 현재 선거가 진행 중이라 교체 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때문에 검사장 이상의 경우 인사를 아예 하지 않거나 소폭의 맞교체 가능성만 거론된다. 한동훈 검사장 등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장들도 인사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일부 고검 검사급 간부 및 평검사에 대한 인사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수원지검 평택지청과 안산지청이 1개 부서가 늘어나고, 3월에는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이 새롭게 문을 열어 인사가 불가피하다. 자연스레 이규원 검사(36기) 등의 인사가 어떻게 이뤄질지도 관심이 쏠린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피고인 신분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 파견 보직을 유지 중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