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한 누드로 안방도 스크린도 올킬!
일본 AV 산업을 꼼꼼히 분석한 <15조 원의 육체 산업>의 한국어 번역판 맨 끝엔 아오이 소라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여기서 인터뷰어는 그녀가 갸바쿠라 걸(일본의 룸살롱 아가씨)로 등장하는 TV 드라마 <양왕>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저는 프로 갸바쿠라 걸이고, 이 가게는 저의 무대입니다. 손님들이 하룻밤의 꿈을 보기 위해 이 가게에 옵니다. 저는 손님들이 원하는 최고의 꿈을 보여드리기 위해 연기할 뿐입니다.”
‘아오이 소라’라는 배우를 설명할 때 이 대사만큼 압축적이면서도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AV(Adult Video)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남성들이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던 그녀는 ‘베이글녀’의 전형이며 남성 관객들에겐 극한의 판타지다.
1983년 11월 11일 도쿄에서 태어난 아오이 소라는 학창 시절 피자 가게, 횟집 등 요식업계를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시부야 거리에서 그라비아 모델 에이전트에게 스카우트된다. 아오이 소라(蒼井そら), 즉 ‘푸른 하늘’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평소에 파란(아오이)색을 좋아해 예명에 넣고 싶었던 차에 어느 날 촬영을 간 지역의 하늘(소라) 빛깔이 너무 예뻐서 만들어진 것. 2001년 모델이 된 그녀는 큰 눈에 귀여운 미소로 어필했고 ‘소녀의 얼굴에 G컵 가슴’을 내세워 삽시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아오이 소라는 2002년에 첫 AV를 찍는다. 그녀의 젊음과 신선함에 초점을 맞춘 <해피 고 럭키>는 데뷔작. 이후 하드코어한 AV부터 화보 스타일의 ‘이미지 비디오’, 비디오용 에로 영화인 V-시네마와 극장 상영을 위한 핑크 영화, 그리고 TV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 이르는 그녀의 광범위한 활동이 시작됐고, 2003년 AV 그랑프리 어워즈에서 ‘최고의 가슴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아오이 소라의 경력이 독특한 건 AV에서 시작해 메인 스트림에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데 간혹 이처럼 메인 스트림으로 옮겨간 여배우들이 AV를 떠나는 것에 비해 아오이 소라는 두 영역의 활동을 병행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두 영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건 섹시하다기보다는 귀여운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 이것은 아오이 소라가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2005년에 일본 인터넷에서 여성 스타 검색 순위 2위를 기록한 그녀는 이후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며 유럽 지역의 잡지 모델로 등장했고 미국에선 화보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녀의 순진하고 귀여운 느낌은 AV의 콘셉트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큐 스타일의 AV에서 그녀는 성기구의 사용이나 서비스 기술 등을 직접 배운다.
2002년에 내놓은 <페이셜>에선 “내 일이 가볍게 취급당하는 것이 싫다” “내 일은 훌륭한 직업이라 생각한다” 등의 말로 AV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놀라운 건 메인 스트림 속의 그녀가 ‘AV 출신’이라는 화제성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극영화 속에서 아오이 소라는 꽤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데, 단역으로 출연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이후 태국의 로맨틱 코미디 <호르몬>(2008)이나 홍콩의 스릴러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2011)에선 ‘연기자 아오이’의 조금은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심심찮게 AV 은퇴설이 흘러나오긴 하지만 작품 제의가 있다면 계속 AV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소망. 또 하나의 소망이라면 실생활에서 오르가슴을 느껴보는 것인데 아오이 소라는 “아직까지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다. 남자들은 내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전에 멈춘다”고 말한다. AV 속의 섹스에 대해서도 “처음엔 기분 좋다가 곧 지쳐 버린다”며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때 만화가인 지로 하치미쓰와 동거했으나 현재는 헤어진 상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