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불공정 프레임’ 가두며 보수 결집…김건희 악재를 호재로 전환, 안철수 고사 시나리오까지 가동
이를 위해선 내우외환의 그림자를 확실히 날려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우’의 대표 격이었던 홍준표 의원은 이른바 ‘공천 부탁’ 논란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방법으로 불공정 프레임이 씌워진 채 설 밥상에 올라갔다. 또 다른 내우(內憂)였던 부인 김건희 씨 논란은 최대한 낮은 자세로 대하지만 언론의 침소봉대 보도 희생양이라는 목소리를 설 밥상에 실어낼 기회를 노리는 모습이다.
‘외환’의 최선두였던 ‘안철수 상승세’는 물밑 협상과 외면, 투트랙 대응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안 후보 지지율 상승세가 꺾이면서 고사 작전이 먹혀들었다는 메시지를 밥상에 올리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홍준표, ‘불공정’에 가둬라
홍준표 의원은 윤 후보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다. 아군인지, 적군이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윤 후보로서는 당 내부 분열 이미지 해소를 위해서 홍 의원을 ‘깐부’로 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삼고초려 끝에 윤 후보는 1월 19일 홍 의원과 회동했고, 이날 의외의 결과를 낚아챘다. 홍 의원이 대선 당일 치러지는 보궐선거 일부 지역에 전략공천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홍 의원은 서울 종로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대구 중남구엔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을 공천해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밀실 공천, 거래 공천의 구태에 대한 당 내부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이준석 당대표까지 직접 홍 의원 요구에 대해 선을 분명히 긋고 나섰다. 이 대표는 1월 20일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홍 의원의 서울 종로·대구 중남구 전략공천 요구에 대해 “지도부가 갖고 있는 원칙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종로는 전략공천 검토를 하겠지만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 중남구 등에 대해서는 전략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윤 후보 측도 기다렸다는 듯이 홍 의원을 향한 총공세를 폈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1월 20일 선대본부-원내지도부 연석회의에서 “당의 지도자급 인사라면 대선 국면이라는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마땅히 지도자로서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한 채 구태를 보인다면 지도자의 자격은커녕 우리 당원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홍 의원을 향해 쏘아붙였다. 홍 의원에 대한 사실상의 공개 저격이었다.
홍 의원은 이내 격앙된 반응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권영세 본부장을 겨냥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권 본부장 발언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견이 있었다면 내부적으로 의논을 해서 정리했어야지 어떻게 후보하고 얘기한 내용을 갖고 나를 비난하나”며 “방자하다.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고 발끈했다.
홍 의원이 얼굴을 붉혀가면서 윤 후보 측에 대한 역공에 나섰지만 당 내부는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나서 홍 의원 행태에 대해 태클을 걸고 나섰다. 민주당은 윤석열-홍준표 회동을 ‘공천거래’라며 공격했고,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홍 의원을 두고 ‘양아치’라는 원색적 용어까지 쓰며 비판했다. 홍 의원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인 공정의 가치를 거스른 채 ‘불공정 프레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빠져버린 격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반응이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국민이 정치인을 불신하고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뒤에서 주고받기 하는 이른바 ‘정치적 딜(거래)’ 아니냐. 윤 후보도 불과 얼마 전까지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는데, 공정의 아이콘인 윤 후보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면 납득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도 “홍 의원은 이번 ‘지분’ 요구로 하루아침에 구태 정치인이 됐다”면서 “청년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는 대하 사극에서나 나올 만한 말로 감정적 대응을 한 것 역시 분명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의 지역구(대구 수성을)이자 국민의힘 최대 텃밭인 대구·경북(TK)에서조차 이번 사안으로 인해 홍 의원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다. TK 일부 의원들은 “TK 맹주를 자처하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을 한 뒤 대권 재도전을 꿈꾸던 홍 의원의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할 만큼 이번 사안이 초대형 사고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상당수 후보들이 측근 전략 공천을 시도한 홍 의원에 대해 연일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홍 의원이 2018년 당 대표 시절 지휘했던 지방선거 공천이 부당했다는 뒤늦은 폭로까지 나오는 등 홍 의원은 곤혹스런 입장이 되고 있다. 한쪽이 내려가면 한쪽이 올라가는 제로섬 게임이 바로 정치판인 점을 감안하면 ‘보수 진영의 맏형’ 홍 의원에 대한 내부 비판 공세가 커지는 속에 국민의힘 최대 지지층 TK를 중심으로 설 문턱 민심은 윤 후보로의 지지세가 더욱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전국 권역별 대표 언론사 9곳으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월 20~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3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사회 현안 전국 정기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1.8%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35.5%,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2.9%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윤 후보가 오차 범위 밖에서 우세를 나타냈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앞서 같은 조사(2021년 12월 26~29일)를 했는데 그 조사와 비교할 때 이번 조사에서 윤 후보는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당선 가능성이 8.6%포인트(p) 올라갔다. 국민의힘 지지자 층이 윤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건희는 희생양 이미지
초대형 악재로 예상됐던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록’은 예상 밖으로 타격이 적었다는 게 국민의힘 자체 판단임은 물론,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녹취록이 1월 16일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통해 방영되고 이후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됐지만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율은 하락세는커녕, 일부 조사에서는 상승세를 타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를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월 2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 씨의 녹취록을 공개한 MBC를 향해 “나라까지는 몰라도 윤석열을 구한 것은 확실해 보이네”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겨냥해서는 “네거티브에 가장 불리한 후보가 용감하게 네거티브에 몰빵했으니, 이미 잊힌 욕설 녹취록을 왜 다시 불러내냐”고 했다. MBC가 김건희 씨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뒤 이 후보의 새로운 ‘형수 욕설’ 녹취록이 공개된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녹취록으로 윤 후보보다 이 후보가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MBC가 1월 23일 방송에서 김건희 씨 통화 녹음파일 후속 보도를 하기로 했으나 이를 전격 취소하면서 녹취록 파문은 더욱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진단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김건희 씨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까지 내놨다. 그는 1월 24일 연합뉴스TV에 출연, 김 씨와 관련해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오히려 본인에게 지금까지 구축돼 있던 이미지보다 나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김건희 씨를 둘러싼 유흥업소 접대부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부분이 지금까지 후보자의 배우자가 위축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해명될 부분은 해명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고 오해가 풀릴 부분은 풀려가고 있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한 관계자는 “우리도 김 씨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방송 후 한결같이 ‘이 내용이 전부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설 전에 모든 것이 공개됐고 언론의 과잉 보도 희생양이라는 여론까지 만들어내 설 밥상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안철수, 고사목 메시지
윤석열 후보가 2021년 연말 이후 올 연초까지 당내 분란에다, 부인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흔들리는 동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격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10%를 돌파하더니 15%를 넘어서는 수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윤 후보가 1월 들어서며 이준석 대표와 손을 잡고 부인 리스크도 공개된 악재로 전환, 객관적 평가 대상으로 올라가면서 윤 후보 지지세는 다시 반등했다. 이러는 사이 안 후보 지지율 급등세는 잠잠해지면서 2강 구도를 깨뜨리기엔 역부족인 형국이다.
안 후보는 1월 18일 중앙선대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영입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등 지지율 재반등의 기회를 노렸으나 이러한 적극적 움직임이 지지율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 목소리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한때 강하게 나왔고, 실제로 단일화를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분석도 분출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윤 후보는 물론,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들은 “단일화가 필요하다”며 물밑 움직임은 보이지만 안 후보에 대해 적극적 손짓은 하지 않고 있다. 안 후보가 스스로 지지율을 올리는 발광체가 아닌, 윤 후보가 흔들릴 때마다 그 지지세를 받아가는 반사체일 뿐이어서 자체 확장성이 뚜렷하게 막혀있다는 이유다.
더욱이 부산이 고향인 안 후보는 지역 구도에서 윤 후보와 겹치는 영역이 명확해 추가적 지지세 결집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 하락세가 커질 것이라는 게 윤 후보 측 판단이다. 때문에 설 밥상머리 민심에 ‘윤석열 대세론’을 얹어놓는다면 안 후보는 순식간에 고사목으로 전락한다는 시나리오를 윤 후보 측은 짜놓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윤석열 자강론’도 이런 배경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부산의 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은 “안 후보는 좋은 과학자이자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정치판에서는 이미 정치력 검증이 끝났다는 것이 대체적 판단이다. 설 밥상에서도 이 얘기가 분명히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