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읽고 ‘짱구’ 떠올리며 캐릭터 구축…효주 누나 칼솜씨 대단, 성오 형과는 호흡 착착”
“1편을 진짜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해도 김남길 선배님을 따라가거나, 따라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너무 김남길 선배님을 닮아가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면 보시는 분들도 불편하셨을 테니까요(웃음). 그렇게 완성된 저희 작품을 보고 부담이 덜해졌다기보단 ‘아, 내가 봤던 1편과는 관객들이 좀 더 다른 결로 재미를 느끼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하늘의 새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총 누적 관객 수 866만 명을 기록한 전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이어 8년 만에 공개된 후속작이다.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 분)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한효주 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을 찾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선 해양 활극을 그린다. 출연진이 모두 바뀐 만큼 전편과의 연속성은 없지만, 같은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대본 자체에 캐릭터의 에너제틱한 느낌이 잘 나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게 됐는데, 사실 저는 처음 대본을 읽고 얘가 참 천방지축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려면 어느 정도 텐션이 있어야 하겠다 싶었고요. 그러다가 ‘짱구는 못 말려’를 떠올리게 된 거예요(웃음). 그 못 말리는 느낌을 조금 유지해보자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무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모함과 넘쳐나는 혈기로 가득 찬 인물이다. 정돈되지 않은 폭탄 머리와 꼬질꼬질한 매무새로 사실상 산적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강하늘을 보고 있자면 “이 작품을 위해 정말 다 놔 버렸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무치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로맨스 눈빛을 보며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동백꽃 필 무렵’의 캐릭터 용식의 만화 버전을 곧 무치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강하늘은 “괜찮은 평인 것 같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놓고 천방지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관객 분들이 딱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는 일반적인 사극의 장발 스타일이었는데 감독님도, 분장 팀도 이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뭔가 다른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폭탄머리를 하게 됐죠. 그런데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런 파마는 계속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2주일마다 한 번씩 파마를 하니까 나중엔 미용실에서 제 머리 상태를 보고 ‘작품 끝나면 삭발 한 번 하셔야 돼요’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머리도 머리였지만, 촬영 현장도 늘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해양 액션에 도전하며 실제 배 크기처럼 제작된 거대한 장치 위에서 파도와 함께 싸우느라 멀미에 시달리는 것도 일상이었다. 수중 액션 신을 촬영할 땐 폐소공포증을 겪기도 했고, 촬영 일정이 겨울까지 이어지면서 추위에도 맞서야 했다.
다함께 고난을 겪다 보면 평탄했던 현장보다 더 끈끈해지는 게 영화인들이라 했던가. ‘해적: 도깨비 깃발’의 동료들도 그랬다. 강하늘은 배우 한 명 한 명을 꼽으며 그들이 얼마나 ‘프로’처럼 현장에 임했는지, 서로의 케미스트리는 얼마나 좋았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첫 타자는 상대역 한효주였다.
“저도 ‘청년경찰’에서의 검도, ‘보보경심: 려’에서 검술 액션 등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효주 누나만큼 열심히 한 건 아니에요. 액션 연습실에 갈 때마다 효주 누나는 늘 먼저 와서 땀범벅으로 맞이해주더라고요(웃음). 현장에서도 칼을 쓰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칼을 계속 만지작만지작 훈련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도 칼을 잡는 느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런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해적왕 꿈나무 ‘막이’ 역의 이광수와는 2011년 영화 ‘평양성’이 두 배우 모두의 첫 영화 데뷔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 인연이 그대로 ‘해적: 도깨비 깃발’까지 이어진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무치의 오른팔이자 의적단 부두목 ‘강섭’ 역의 김성오와의 케미를 ‘최고의 케미’로 꼽았고, 남배우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롤 모델로 삼았을 권상우의 악역 캐릭터 ‘부흥수’와의 액션 신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광수 형이랑은 촬영할 때 2~3테이크 이상을 가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따로 맞춰보고 연습할 필요 없이 그냥 현장에서 하면 되더라고요(웃음). 또 영화를 넘어서 촬영할 때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건 성오 형이었어요. 아이디어도 너무나 많고 진짜 천재 같아요. 형이 해주는 것들을 받아서 하다 보면 신이 점점 더 살아나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리고 상우 형과의 액션 신, 고수는 하수를 상대할 때 온 힘을 드러내지 않죠(웃음). 워낙 액션에 출중하신 분이라 저는 한 수, 한 수를 배운다는 느낌으로 촬영했어요. 사실 그 자체가 영광이죠. 제가 언제 또 상우 형님과 연기를 해보겠습니까(웃음).”
전작으로 인증도 됐겠다,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도 모였겠다, ‘해적: 도깨비 깃발’에는 기대가 모일 수밖에 없다. 2021년 11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수의 급증과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해 영화계가 또 다시 휘청대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차였다. 그나마 외화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흥행을 주도한 국산 영화들은 모자랐던 게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비교적 접근이 쉬운 코믹 액션 장르를 내세운 ‘해적: 도깨비 깃발’이 설 특수를 타고 ‘스파이더맨’을 넘어 한국 영화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란 영화계의 기대가 크다.
“저는 한국 영화의 체면 이런 걸 넘어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저도 관객인데 ‘스파이더맨’ 같은 외화가 잘 되는 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또 굉장히 다행인 일이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이 아직 극장에 가는 것을 너무나 먼 나라 얘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요. 좋은 작품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영화에게도 좋은 일이죠. 전체적으로 극장가가 활발해지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영화 전체에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저희 작품이 잘 돼서 웃는 거보단, 저희 작품이 잘 돼서 개봉을 미루고 있는 우리나라 다른 영화들이 좀 더 마음 놓고 개봉을 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되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