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부터 배송까지 직접 관리, 국내 최초 명품 풀필먼트 구축…글로벌 시장 공략 연내 유니콘 합류 목표
2020~2021년 오프라인 유통업계 실적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며 고꾸라졌다. 이에 부실점포 폐점, 매각 등의 구조조정을 진행한 곳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서도 나홀로 선전한 카테고리가 명품이다. 실제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명품의 비중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 매출에서 명품을 비롯한 해외 유명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4.5%에서 2020년 29.3%, 2021년 상반기 35.4%까지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이커머스 플랫폼도 명품 판매처로서 부상했다. 그간 비싼 만큼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명품 플랫폼들이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전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이커머스 명품 매출액은 1조 7475억 원으로 전년 대비 7.2% 늘어났다. 온라인 명품 구매 비중은 2016년 8.9%에서 올해는 11%까지 증가했다. 명품이 전통적으로 온라인 침투율이 낮았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장세다.
오프라인 판매에 집중하던 유통 대기업들까지 온라인 명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SSG닷컴은 명품 디지털 보증서 ‘SSG 개런티’ 서비스 출시 후 약 5개월간(2021년 8월 26일~2022년 1월 22일) 명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었다고 밝혔다. SSG닷컴은 올해 1분기 중 보안 차량과 전문 요원을 통한 명품 프리미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연내 중고거래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명품 중고거래(리셀)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1월 21일 롯데온은 ‘명품 구매-위조 상품 피해 예방-사후 수선’으로 이어지는 ‘명품 수직화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명품 수선사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스타트업인 럭셔리앤올과 손잡았다. 앞서 지난해 8월 명품 인증 프로그램인 ‘트러스트온’을 도입하기도 했다.
명품 소비 패러다임 전환 속 2016년 11월 설립된 트렌비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트렌비의 올해 핵심 목표는 거래액 1조 원을 기반으로 유니콘 대열에 합류하는 것. 실제 최근 성장세는 가파르다. 특히 지난해 9월 배우 김희애, 김우빈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모바일앱 설치 건수는 2주 만에 205% 성장했고, 2021년 11월 월 전체거래액은 약 5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11월 트랜비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69만 4487명, 일간 활성 사용자 수(DAU)는 7만 7900명을 기록해 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21년 거래액은 2020년 대비 3~4배 성장했다는 것이 트렌비 설명이다.
이 같은 성장세 덕분인지 시장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트렌비는 2019년 시리즈A 투자를 시작으로 2021년 3월 220억 원의 C라운드 투자를 유치해 3년 만에 누적 투자액 400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 1월 200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면서 현재 누적 투자금은 600억 원에 이른다.
다양한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도 영입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트렌비는 최근 기존 이종현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이어 안석민 최고기술책임자(CTO), 김필준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주희 최고경영전략책임자(CSO), 오민영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4명의 신규 임원을 새로 영입했다.
안석민 CTO는 엔지니어링 팀과 프로덕트 팀을 셋업하고 글로벌 이커머스 개발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지난 10년간 쿠팡에서 모바일 개발부분을 총괄했다. 재무관리를 책임지고 투자나 인수를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오민영 CFO 지난 10년간 뉴욕과 홍콩의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다양한 회사의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상장) 딜을 수행했다. 최주희 신임 CSO는 BCG(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디즈니 전략 및 미디어팀에서 일했고 신세계의 W컨셉 인수 당시 W컨셉의 CSO로 근무했다.
최주희 CSO는 일요신문에 “2021년 12월 2022년 1월의 매출 추세를 봤을 때, 올해 1조 원 정도의 거래액 규모는 충분히 달성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글로벌 론칭, 신규 카테고리 확장, 그리고 세일 비즈니스의 볼륨화를 통해 좀 더 목표를 키워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트렌비는 국내 최다 명품 보유 플랫폼으로서 취급 브랜드 약 3만 5000개, 취급 상품 160만 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최주희 CSO는 특히 셀러들을 모아 놓은 병행수입 형태의 오픈마켓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는 경쟁 명품 플랫폼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공식 판매처로서 고급 소비재를 유통하는 백화점, 면세점 등과 비교해도 경쟁력을 지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주희 CSO는 “오픈마켓은 손쉽고 재고 리스크가 적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지만, 마진율이 낮으며 취소 및 반품률이 높아 비즈니스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고객 서비스에서의 불만이 높다. 우리는 직접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 품질이 월등히 높고, 고객 재방문율이 높다”며 “특히 전 세계의 플랫폼, 파트너들을 통해 구하기 힘든 명품들을 구할 수 있고, 가격을 비교해 가장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백화점, 면세점과 비교하면 제품 라인업이 다양하고, 최저가에 구할 수 있다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렌비는 이른바 3대 명품(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등을 공수할 수 있는 배경으로 글로벌 풀필먼트 시스템을 꼽고 있다. 트렌비는 국내 최초로 명품 직구매 및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일본까지 해외 지사와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 중이기에 가능했다. 해외 지사를 기반으로 해외 부티크 및 리테일러와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구매부터 검수, 배송까지 명품 구매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트렌비는 올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 국가를 넓혀갈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8월 일본에서 웹사이트 정식 오픈했다. 장기적으론 글로벌 명품 제품을 구매하는 공식 판매처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최주희 CSO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글로벌 프리미엄 백화점, 해외 아웃렛, 공식 브랜드몰, 해외 유명 편집숍 등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트렌비 해외 지사의 직구매가 진행된다”며 “최근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던 ‘티파니X슈프림’ 기획전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던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트렌비 미국지사에서 직접 공수해 가능했다”고 했다. 이어 “1분기에 글로벌 전략을 수립해 상반기 안에 글로벌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하반기 내에는 아시아 권역 중심으로 글로벌 앱을 론칭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방향은 현재 세우고 있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쿠팡은 풀필먼트 서비스를 주력 사업으로 성공시키면서 급성장했지만, 2021년 3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5조 원에 육박한다. 직매입·자체배송 풀필먼트 시스템을 통해 실익을 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최주희 CSO는 “쿠팡의 풀필먼트 모델과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트렌비의 풀필먼트는 고객 주문을 기반으로 사입을 한다. 재고를 대량으로 사입할 때는 기존 과거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기 있는 상품만 매입한다. 재고 리스크가 적다”며 “기존 상품들의 평균 재고일수(재고수량÷일판매량)는 평균 20일 수준으로 한 달 이내에 소진되고 있다. 풀필먼트가 늘어갈수록 적자가 재고에 의해 커지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