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수작업 대신할 ‘액체 핸들링 로봇’ 국산화 첫 성공…장비 판매 넘어 ‘실험실 자동화 플랫폼 구축’ 목표
지난 1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바이오헬스 수출은 2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160억 달러(약 18조 9000억 원)를 돌파했다. 산업부는 올해 수출동력 강화를 위해 미래차·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 등 '빅3' 수출 유망품목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특히 백신·원부자재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 나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4년까지 6조 3000억 원 규모의 민간 설비투자를 지원할 방침이다. 대기업들도 바이오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에이블랩스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다"
에이블랩스는 주목받는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있다. 2021년 2월 설립된 에이블랩스는 실험 자동화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지능형 액체 핸들링 로봇 제조 및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액체 핸들링 로봇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바이오 장비 시장을 노리고 있다.
현재 에이블랩스는 평균 2억 원대인 기존 액체 핸들링 로봇의 10분의 1 정도인 2000만~3000만 원대에 실험 자동화 로봇을 판매 중이다. 현재 바이오 실험실 90%가 수작업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실험 자동화 시장성은 높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실험 자동화 시장의 규모가 2019년 42억 달러(약 5조 22억 원)에서 연평균 5.2%씩 성장해 2025년엔 55억 달러(6조 50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신상 에이블랩스 대표이사는 “바이오산업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실험은 액체를 핸들링(흡입, 분주, 섞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실험 자동화는 수작업 실험을 자동화 로봇으로 대체해 실험의 재현성을 높이고,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내엔 경쟁자가 없다. 기존 외국 회사들은 대부분 글로벌 대형 제약사를 타깃으로 크고, 무겁고, 비싼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전문 엔지니어의 도움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반 실험실 수준에서는 도입하기 매우 어렵다. 90% 이상이 아직도 수작업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수차례 제품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할 정도로 액체 핸들링 로봇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한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액체 핸들링 장비를 해밀턴, 퍼킨엘머, 테칸 등 해외기업의 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특히 에이블랩스는 가격뿐만 아니라 외산 장비와 비교해 필요한 성능을 갖춘 데다가 더 가볍게 장비를 만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에이블랩스의 액체 핸들링 로봇장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해당 공정에 국산 장비를 도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관련기사 [단독] 삼성바이오로직스, 스타트업 에이블랩스의 장비 도입한다).
신상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꼭 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송도에 사무실을 구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자동화 대응 영역, 유지보수, 새로운 프로세스 개선 등 자동화 대응 영역에서 필요할 때마다 현장 지원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며 “외산 장비업체 지인을 통해서 꾸준히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연락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인천스타트업파크의 2021 IFEZ 실증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액체 핸들링 로봇장비 국산화를 위해 공동으로 제품을 실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이블랩스도 창업 초기 자금난으로 위기를 겪었다. 초기 자본금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사들은 ‘꿈이 지나치다’, ‘사업을 잘 모른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투자 제안을 뿌리쳤다. 사업이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 거짓말처럼 지난해 7월 엔젤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엔젤투자는 개인들이 돈을 모아 창업하는 벤처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주식으로 그 대가를 받는 투자형태다. 신상 대표는 당시 상황을 “말 그대로 엔젤이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에이블랩스는 투자를 거절한 투자사들에게 보란 듯이 사업에 속도를 냈다. 각종 지원사업을 따내는 동시에 화려한 수상 실적을 올렸다. 2021년 5월과 6월 인천스타트업파크로부터 각각 ‘Spark IR Day’, ‘Boost Startup’ 프로그램에 선정돼 투자 유치와 글로벌 시장 진출 관련 지원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5월 과천시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6월 중소벤처기업부 초기창업패키지 창업기업 선정돼 7000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상반기를 지내고 8월에는 한국발명진흥회 IP나래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특허 지원과 2400만 원을 따냈다. 9월에는 신용보증기금 ‘Start-up NEST 사업 10기’로 선정됐고, 10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디딤돌 과제로 최종 선정돼 1억 2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12월에는 이오스튜디오가 주관한 스타트업 서바이벌 오디션 ‘유니콘하우스’에서 대상을 거머지면서 상금 5000만 원을 받았다. 창업희망콘서트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그가 장비에 눈돌린 이유
1988년생인 신상 대표는 바이오 자동화 분야의 전문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고,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삼성서울병원 난치암연구사업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과정 동안 환자 유래종양세포를 이용한 고속 약물 스크리닝 (HTS, high-throughput screening)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운영했다.
이를 기반으로 환자 종양 유전체-약물 반응성에 기반한 임상 반응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해 암 환자의 맞춤 표적치료법을 제시했고,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후 2015년 9월부터 2021년 1월까지는 반도체 검사 장비 회사인 에이티아이(주)에서 바이오사업 팀장을 역임하며 바이오 자동화 장비를 개발했다.
신상 대표는 “열다섯 살 때 양가 조부께서 암으로 돌아가셨고, 그때의 큰 충격으로 암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박사학위 과정 중에서 환자분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닌 치료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래서 연구자들의 암 연구를 가속화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암세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동화 시스템 도입되지 않았고 국산 장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이라고 말했다.
에이블랩스는 장비 판매를 넘어 클라우드 랩을 통한 ‘실험실 자동화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클라우드 랩은 로보틱스 기반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컴퓨테이션(주어진 입력으로부터 문제의 해법을 얻는 계산) 기반으로 데이터를 생성해 고객들에게 실험 결과를 제공한다.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만 갖고 있으면, 클라우드 랩을 통해 아이디어의 연구를 진행해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연구를 위해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고 단순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신상 대표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자체 서버를 사용하면 되지 저걸 왜 쓰냐고 했지만, 현재 전 세계 사람과 기업들이 쓰고 있다”며 “이 같은 전자동화된 실험실 프로세스가 미래에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현장에선 희귀한 제조사이자 해외시장을 노리는 에이블랩스의 포부는 당찼다. 신상 대표는 “국내 시장이 없기에 M&A(인수합병)를 한다면 해외기업이나 해외 전략적투자자(SI)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문제는 해외에 매각하면 기술 국부 유출이라는 점”이라며 “IPO(기업공개·상장)를 성공적으로 하고 싶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바이오 연구개발(R&D) 사업은 치료제 및 바이오 소재 개발 쪽에 치우쳐 있다. 바이오 실험 자동화 로봇 또는 플랫폼 등의 융합형 바이오 쪽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해주는 파트너십 지원사업이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