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사건 중 ‘n번방’만 실형 선고, 제작·유포자 집행유예 다수…손해배상 명령 활성화 필요성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을 이용해 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 편집물이다. 사진 몇 장만 있으면 움직이는 영상에도 영화 컴퓨터그래픽(CG)처럼 얼굴을 입힐 수 있어 성범죄에 악용되는 일이 잦다. 아예 ‘딥페이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유명인 합성물만 게시하는 해외 음란물 사이트도 등장했다. 유명인사의 경우 모든 딥페이크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범죄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범죄의 경우 성범죄 혐의가 적용돼 법정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요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검색을 통해 지난 5년 동안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딥페이크라는 단어가 판결문에 처음 등장한 시점은 2020년 9월 정도였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음란물 제작·반포 행위가 성범죄로 인정돼 처벌 판결이 내려진 것은 2021년 6월로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해당 기술이 국내에 상용화되기 시작한 2018년쯤부터 꾸준히 존재했지만, 관련법이 미비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웠다. 음란 합성물 제작 및 유포 혐의가 입증돼도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되곤 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나서야 2020년 3월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처벌법이 마련됐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 2는 누군가의 얼굴과 신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 제정 이후에도 이전과 다를 것 없이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문 검색으로 열람이 가능한 2020~2021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판결문 10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n번방 사건 연루자들뿐이었다.
딥페이크는 물론 아동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판매자들도 실형을 받지 않았다. 친구 사이인 A 씨와 B 씨는 2020년 6월, 1211개의 아동성착취물과 딥페이크 영상 3039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된 신체 사진 55건을 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SNS(소셜미디어)에 ‘미성년자 음란물 중에서도 희귀한 것만 판매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려 구매자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판매와 홍보를, B 씨는 판매수익금인 문화상품권 현금화를 맡는 등의 효율적인 역할 분배 행위도 있었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배포와 소지와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총 6개의 혐의가 적용됐다. 부산지방법원 재판부는 “많은 양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판매·유포하였고 판매 수익도 소액이 아니다”라면서도 “만 18세의 소년들이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대한 취업제한도 면제됐다.
유포자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빠져나왔다. 의정부지방법원은 2021년 1월 딥페이크 음란물을 판매한 대학생 C 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C 씨는 2020년 1월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로 여성의 나체 사진에 여자 연예인 얼굴과 일반인 지인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팔아 200만 원을 벌었다. 연예인과 일반인 지인이 합성된 사진은 7장에 1만 원, 일반인 지인의 합성 사진은 5장을 1만 원에 팔았고, 5만 원을 내면 합성물 640장이 담긴 링크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장기간에 걸쳐 음란한 사진을 합성해 판매한 범행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는 점, 초범인 점,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을 예정하고 있는 점 등을 인정한다”며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가 세상에 퍼뜨린 딥페이크로 피해를 입게 될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범죄 특성상 소수의 제작자와 다수의 유포자로 구성된다. 단순 유포 행위는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수의 가해자는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지속적인 유포 행위야말로 피해자들에겐 고통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하는 범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기술매개 성폭력 대응을 위한 법제 정비 방안’에 따르면 불법촬영물과 딥페이크 등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는 무엇보다 유포된 제작물을 삭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생성된 디지털 콘텐츠는 무수히 많은 복제를 거쳐도 원본은 소멸되지 않고, 여러 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영구적으로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삭제 요청 지원 및 유포 현황 모니터링 지원을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확산되는 속도와 양을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어 피해자 대부분은 국가 지원을 받는 동시에 디지털 장의사 등 민간 사업자도 고용하고 있다. 상당한 삭제가 이루어졌더라도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다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중단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법원에서 가해자에게 피해 금액에 대한 배상명령을 하는 사례가 극히 적어 결국 모든 부담은 피해자의 몫으로 남는다.
전문가들은 피해영상물의 삭제 및 모니터링에 소요되거나 소요될 것으로 예정되는 비용 등에 대해서는 형사재판에서 손해배상 명령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현재도 일부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배상명령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 재판에서는 비용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배상 명령을 하지 않는 일이 많다. 하지만 성착취물 삭제와 모니터링에 들어가는 비용의 경우 기간만 정하면 오히려 다른 피해 배상보다 더 명확하게 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며 “적어도 최초 제작자와 유포자에게는 지속적인 유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재범 방지에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