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과잉 의전’ 논란 후 이재명 측 수세 몰려…김건희 등판론 확산 속 ‘김혜경 공격은 자충수’ 시각도
설 연휴를 앞둔 1월 28일 여의도 정치권엔 대형 폭탄이 터졌다. 이재명 후보 경기도 지사 재직 시절 경기도청 소속이었던 배 아무개 씨와 제보자 A 씨가 김혜경 씨 사적 심부름에 동원됐다는 내용의 SBS 보도였다. 그 이후 배 씨 등이 이 후보 아들 대리 퇴원수속 및 처방전 수령을 했고, 김혜경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 등이 연이어 불거졌다.
배 씨는 처음엔 강하게 부인했다. 민주당에서도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이 나왔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뒷받침하는 보도가 쏟아졌고, 결국 배 씨는 2월 2일 “이 후보 부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상식이 넘는 요구를 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다만, 배 씨는 “어느 누구도 시키지는 않았다”고 했다.
2월 2일 김혜경 씨는 “모든 것의 저의 불찰”이라며 모든 선거 일정을 취소했다. 다음 날엔 이재명 후보가 “이번을 계기로 저와 가족, 주변까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직원의 부당행위는 없는지 꼼꼼히 살피지 못했고, 저의 배우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감지하고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혜경 씨의 지시는 없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이 후보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도 이 문제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건을 국민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여론에 악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인카드 유용에 대해 이 후보는 “도지사 재임 시절 부적절한 법인카드 사용이 있었는지를 감사기관에서 철저히 감사해 진상을 밝혀주기 바란다”며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규정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이 후보 측 관계자들은 이번 이슈가 대선 분수령으로 꼽혔던 설 연휴 직전 나왔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 재선 의원은 “밥상머리 민심에서 치고 나가려 오래 전부터 많은 준비를 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악재로 허사가 됐다. 모든 이슈를 덮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수습하지 않을 경우 중도·무당층 표심이 떠날 수 있다”고 점쳤다.
이 후보 측으로선 그동안 ‘영부인 국격론’까지 거론하며 김혜경 씨 내조를 부각시켰던 전략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점도 뼈아프다. 김 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건희 씨와는 달리, 경선 때부터 적극적으로 선거 유세에 동참했다. 정청래 의원의 이른바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껄끄러워진 불교계를 끌어안기 위해 김 씨가 물밑에서 많은 공을 들였던 게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 일각에선 윤 후보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공격 동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도 들린다.
국민의힘은 화력을 총동원해 이 후보를 공격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을 몸종 부리듯 갑질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일 때 공무원 횡령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며 “김혜경 씨 공금 유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런 형태로 도지사 살림을 살았다고 하면 나라 살림을 살 때는 어떡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국민의힘은 청년본부 직속으로 ‘김혜경 황제 갑질 진상규명센터’를 설치했다. 진상규명센터는 이른바 ‘김혜경 방지법’을 대선 공약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의힘은 김혜경 씨를 직권남용, 강요, 국고손실,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유상범 법률지원단장은 “김혜경 씨 사건은 갑질의 종합판이자 공권력 사유화의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후보 배우자 경쟁력을 따졌을 때 오히려 김건희 씨가 더 유리한 위치에 놓였다면서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다른 항목을 다 빼고 대선 후보 인물만 본다면 솔직히 이 후보에게 밀리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배우자 쪽은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과 젊은층들 사이에서 김건희 씨 호감도가 크게 올라가는 와중에 김혜경 씨 사건이 터졌다. 윤 후보에게 ‘김건희’는 이제 리스크가 아니라 에이스 카드”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 진영에서 ‘김건희 등판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건희 씨는 2021년 12월 26일 기자회견에서 “남은 선거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면서 유세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윤 후보가 TV토론에 집중하고, 김건희 씨가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점차 힘을 얻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김혜경 씨 이슈가 다시 김건희 씨에게로 옮겨 붙을 것이라며 불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재명 후보는 1월 26일 ‘네거티브 중단’ 선언을 했다. 윤 후보 부인에 대한 공격 수위가 한층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김혜경 씨를 향한 국민의힘 파상공세에 민주당이 김건희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 제기로 ‘맞불’을 놓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당 선대위 현안대응TF 소속 관계자의 말이다.
“이 후보가 정책이 실종된 대선에 대해 자성하는 차원으로 네거티브 중단 결심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과도한 부풀리기와 왜곡으로 김혜경 씨 공격에 나선 이상, 우리도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네거티브는 네거티브로 받는 게 정가의 오래된 관행이다. 애초에 ‘부인 리스크’는 김건희 씨가 원조격이다. 무속, 갑질 등 수많은 제보들 중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것도 상당히 많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일단 검증보단 폭로에 우선순위가 매겨질 것이다.”
선거 판세가 상대편 후보 부인들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역대 대선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다. 후보 본인, 또는 자녀들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긴 했어도 이처럼 부인들이 네거티브 전면에 등장했던 적은 드물었다. ‘가족 리스크’ 대명사로 통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는 아들로 발목이 잡힌 케이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권양숙 여사 부친 좌익활동으로 공격을 받았지만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발언으로 오히려 지지율을 끌어 올렸다.
후보가 아닌, 배우자의 리스크에 따라 울고 웃는 상황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대응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당은 다르지만 실무진들은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앞서의 민주당 선대위 현안대응TF 관계자는 “터지고 나서야 아는 게 대부분이다. 또 알아도 어떻게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후보만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후보도 힘들어하는 것 같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다 알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윤 후보 최측근 인사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김혜경 씨 기사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적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그 심정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이라면서 “경선 때부터 김건희 씨 기사가 언제 나올지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후보에게 ‘부인 단속 좀 부탁드린다’는 건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김혜경 씨를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하고 있지만 김건희 씨 생각하면 결국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가 부인 리스크를 서로 언급하지 말자는 협정이라도 맺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