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 키운 맥킬롭 감독 아래서 성장 거듭…“한국팬 응원 소리 들리면 온몸에 전율”
맥킬롭 감독은 1989-1990시즌부터 지금까지 33년을 데이비슨 대학의 사령탑으로 활약 중인 레전드 지도자다. 그런 그가 최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수가 있다. 데이비슨대 에이스로 활약 중인 이현중이다.
1984년 LA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리스트인 어머니 성정아 씨와 삼일상고 농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이윤환 감독의 아들인 이현중은 데이비슨대 입학 당시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등의 혜택을 받았다. 누구보다 맥킬롭 감독이 이현중을 원했다. 이현중은 맥킬롭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고 1학년부터 지금까지 출전 기회를 보장받은 덕분에 NBA 스카우트의 관심을 이끄는 에이스로 성장했다.
2월 11일(한국시간) 데이비슨대 홈구장인 벌크 아레나 밥 맥킬롭 코트에서 이현중과 인터뷰를 했다.
―어제(2월 10일) 바로 이 코트에서 세인트 조셉스 대학과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이현중 선수가 체형은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1학년 입학 후 멘탈이 흔들릴 정도로 자괴감을 느꼈다. 개막 첫 경기에서 3점 슛을 쏘다 블록된 공이 관중석으로 향했을 정도로 슛이 약했다. 1학년 시즌이 코로나19로 인해 일찍 종료되는 바람에 3월에 한국 들어가 하루 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운동에 돌입했다. 매일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반복하며 체력을 키웠다. 짧은 시즌이었지만 1학년 때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걸 채워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보완해서 채워 넣은 게 무엇인가.
“여긴 단순히 힘만 좋은 선수가 아닌 힘도 좋고 농구도 잘하는 선수가 많다. 동양 선수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점프나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걸 없애려고 노력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월·화· 목·금에는 강승우 박사님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월·수·금에는 김효범 선생님이랑 농구를, 저녁에는 친구 이준희랑 슛을 쏘는 등 매일 훈련을 반복했다.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데이비슨 대학에 입학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다고 들었다.
“욕심이 많은 편이다. 벤치에 앉아 있을 바엔 한국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1학년이라고 해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보단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뛰고 싶었다. 2학년도 주전으로 활약하다 3학년 때는 에이스가 되고 싶었다.”
―결국 목표대로 되고 있는 것 아닌가. 1학년부터 개막전 선발로 뛰기 시작했으니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여러 대학에서 오퍼를 받았을 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대학이 워싱턴 주립대학이랑 데이비슨 대학이었다. 그때 두 학교를 직접 방문해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워싱턴 주립대에선 내게 무조건 훌륭한 선수라고 말해준 반면에 데이비슨 대학의 맥킬롭 감독님은 잠재력이 있지만 앞으로 고칠 부분도 많이 보인다면서 혼날 각오하고 훈련에 임하라고 말씀해주셔서 데이비슨대를 선택했다. 맥킬롭 감독님은 1학년 때부터 20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해주셨는데 그걸 철저히 지켜주셨다. 멀리 아들을 보내 걱정이 많을 부모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을 보내 나의 안부를 전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아들을 코칭하게 해줘 고맙다는 말씀도 하실 정도다. 비시즌 때 한국에 나가 있으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꼭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어보신다. 감독님을 만난 게 내 농구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른 대학으로 갔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슛이 불발돼도, 자유투가 들어가지 않아도, 약속한 경기 출전 시간을 지키는 감독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조지 워싱턴 대학과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때 감독님이 문자를 주셨다. 올 시즌 우리 팀의 성적이 좋은 이유는 너의 희생 덕분이었다고. 슛 난조는 누구나 겪는 거니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던지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그냥 즐기자고. 나를 위한 플레이를 만들어 줄 테니 자신감을 갖고 뛰라는 격려의 내용이었다.”
―정말 감동적인 내용이다. 어느 지도자가 선수에게 그런 자신감과 신뢰를 보일 수 있겠나.
“나도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그런 부분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벌크업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방법으로 벌크업을 한 건가.
“내 몸을 만들어주시는 강성우 박사님은 단시간에 몸을 키우는 걸 반대하시는 편이다. 단시간 내에 몸을 만들면 둔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꾸준히 파워를 늘리기 위해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오후에는 슈팅 훈련을 병행했다.”
―비시즌 동안 더 좋아진 몸 상태로 팀에 복귀했을 때 밥 맥킬롭 감독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나.
“감독님은 선수들이 비시즌 때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걸 싫어하시는 편이다. 선수들이 쉽게 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매일 훈련만 하다 팀에 복귀한 내게 감독님은 “너, 다른 사람 된 것 같다”며 반색하셨다. 나는 비시즌을 선수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개인 트레이닝 캠프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수비에서 아쉬움이 많다. 아직은 힘이 부족하고 발이 느린 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밀착 수비의 강도가 장난 아니다. 2학년 때도 견제가 심했지만 지금과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수비수들이 압박 수비로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어제 경기에서도 확인했겠지만 상대 수비와 거의 술래잡기하듯이 코트를 돌아다닌다. 그런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지 여부와 슛이 안 들어갔을 때 수비와 리바운드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에 신경 쓰는 편이다.”
―슛이 잘 들어가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가.
“김효범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훌륭한 슈터는 숫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그래서 슛이 안 들어간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리 안 들어가도 난 계속 슛을 던질 것이기 때문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올 시즌 데이비슨대가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애틀랜틱10 컨퍼런스 1위를 질주 중이다. 한때 15연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터라 그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현중 선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데이비슨대 홍보 담당자가 말하길 경기마다 NBA 스카우트가 찾아와 이현중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다고 귀띔해주더라. 이런 분위기가 부담스럽진 않나.
“솔직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마 미국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해도 경기에만 집중할 자신이 있다. 강성우 박사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NBA 스카우트가 경기장에 왔다고 해서 강제로 네 자신을 NBA로 갈 수 있는 선수로 만들지 말라고. 다른 거 하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나는 NBA 스카우트가 찾아오는 것보다 한국 팬들이 경기장에 오시는 게 훨씬 더 기쁘고 행복하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경기장에서 한국 팬들을 볼 수 없었다. 2학년은 코로나19로 인해 관중 없이 경기를 치렀다. 3학년 때 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한국말로 “이현중 파이팅”이라고 해주시면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힘이 난다.”
―언제부터 NBA에 대한 꿈을 키운 건가.
“중학교 시절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경기를 보고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과연 내가 NBA에 진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부턴 생각을 바꿨다. 갈 수 있다고, 잘 보완하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매체에선 이현중 선수가 매년 60명을 뽑는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TOP40에 들 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하승진에 이어 한국인 2호 NBA 선수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은 매 경기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 결과로 이어진다면 꿈이 현실로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길들이 한국의 농구 유망주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고 프로 입단하는 걸 목표로만 삼지 말고 외국 진출에 대한 기회를 더 많이 갖고, 여러 선수들이 미국 대학에서 뛰길 바란다.”
이현중은 인터뷰 말미에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이현중입니다. 제 농구 인생을 드라마처럼 써 갈 테니 재미있게 봐주세요.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많이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