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스즈키 유미코라는 일본 작가가 발표한 일본 만화였다.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칸나상 대성공입니다(カンナさん大成功です!)’이고 일본에서 인기가 엄청나 한국에서 ‘미녀는 괴로워’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한국에서도 제목처럼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데 매우 회의적이었다. ‘한국에서 성형을 소재로 한 작품이 될까’ ‘혹 사람들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작품이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등등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우리 회사 기획실 전원이 “대표님 이 작품은 꼭 하셔야 합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속으로 마뜩찮았지만 그냥 동료들을 믿고 작품을 진행했다. 작품은 2006년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관통하며 당시 한국 로맨틱 영화 사상 최다 관객(662만 명)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9년엔 ‘국가대표’라는 작품을 기획했다. 이 작품은 한국 사람들에겐 매우 생소한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기획이었는데 이 작품이 스포츠 영화이고 너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기라서 걱정이 됐다. 무엇보다도 스포츠경기를 재연해야 하니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 우려됐다.
그래서 ‘국가대표’는 다른 회사에 권리를 넘기고 ‘마린보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국가대표’는 관객이 800만이 넘는 대한민국 스포츠영화 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고 내가 선택한 ‘마린보이’는 최종관객이 80만여 명에 그쳐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그동안 흥행작품을 많이 경험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신과함께 죄와벌’, ‘신과함께 인과연’ 등이 대표적이다. 나에게 첫 번째 1000만의 영광을 가져다준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사실 내 기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을 고사한 여러 명의 관계자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내가 제작하게 됐다. 이 작품이 1000만이 넘는 영화가 될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 내 앞에서 이 작품을 고사해준 분들이 있었기에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앞에 열거한 저 흥행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여러 명의 배우가 거절한 후에 최종적으로 저 작품을 선택한 배우들이 흥행의 영광(?)을 가져간 것이다. 물론 작품을 고사한 이유야 수만 가지였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고민에 고민을 한 뒤에 최종적으로 거절한 작품이 나중에 결과적으로 흥행을 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계에선 기획을 완성하고 대본을 만든 후 처음으로 선택한 감독이나 배우들과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수많은 감독, 배우들을 거쳐 간 후에 최종적으로 작품에 맞는 사람들과 작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흥행작품을 거절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배우나 제작자, 감독을 안목이 없다거나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과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신념을 믿고 선택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응원한다.
앞으로 3주일 후면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의 유권자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이끌 후보들의 시나리오를 심사하는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후보들을 심사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해서 최종적으로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유권자로서, 심사위원으로서 고민이 많아지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 후보를 영화나 드라마의 심사처럼 생각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 나라를 책임질 리더를 뽑는 것이 어찌 간단하고 가벼운 결정이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내가 인정하지 않는 이가 된다고 해서 결코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 못한,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인물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인물이 선택을 받으면 나라가 망할 거라고 반목하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고 하지 말자.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후보도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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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