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배고픕니다” 정치 광고 물길 바꾼 작품…낙원상가 인근 ‘강원도집’ 한 그릇 6000원 그대로
15년 전 대선에서 이미지 메이킹 효과를 톡톡히 본 대선후보가 있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별 말 없이 국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이 전 대통령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대선 광고계 패러다임을 바꾼 사례로 꼽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때 BBK 의혹으로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정면 대응보다는 장점을 부각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택했다.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컸던 것도 네거티브 대응이 아닌,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힌다.
이로 인해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이 완성됐다. 이른바 ‘이명박 먹방’이라 불리는 국밥집 광고다. 이 전 대통령은 국밥 한 그릇을 먹고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전 대통령 공과와 상관없이 국밥을 먹는 장면 그 자체는 2022년 현재도 ‘밈(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즐겨 쓰는 2차 창작물 또는 패러디물)’으로 돌고 있다.
정확히 59초인 이 광고 내용은 이렇다. 국밥집에서 돼지고기를 썰고 있는 ‘욕쟁이 할머니’가 누군가를 발견한 뒤 “오밤(한밤) 중에 웬일이여. 배고파?”라는 질문을 던지며 “맨날 쓰잘떼기(쓸데) 없이 싸움만 하고 XX…우리는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겨? 밥 더 줘? 더 먹어 이놈아”라고 손님을 다그친다. 동시에 국밥을 정신없이 먹는 이 전 대통령 모습이 담긴다.
이어 음악이 연주되고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국민 성공 시대를 열기 위해 이명박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내레이션이 끝난 뒤 ‘욕쟁이 할머니’는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 알겄냐”라고 말한다.
이어 욕쟁이 할머니와 이 전 대통령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기호 2번 이명박이 해내겠습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광고는 끝난다. 한 광고 전문가는 “별 다른 내용과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덜어내고 사소할 수도 있는 서사를 표현한 점이 이 광고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광고계에 따르면 ‘이명박 국밥 먹방’ 광고는 정치 광고계 물길을 바꾼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 광고계 관계자는 “기존 웃는 사진 몇 장과 업적을 담은 텍스트를 줄줄이 나열한 대선 광고와 달리 이명박 국밥 광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이는 영상으로 제작됐다”면서 “정치권에서 제작하는 광고와 상업 광고의 격차가 줄어듦과 동시에 대선 광고에 대한 대중 인식을 바꿔놓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해당 광고를 회상하며 “모든 권력은 국밥에서 나온다는 본질을 관통하는 광고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국밥은 서민들의 정서와 고단한 삶을 대변하고 공감할 수 있는 키워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밥을 먹으며 욕쟁이 할머니 얘기를 듣는 모습은 민생 호흡이라는 키워드를 대변할 수 있다.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이 일치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도 정치권은 말하는 입만 강조했지 국민들의 먹는 입에 대해선 강조하지 않았다. 그게 ‘민생 정치 실종’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 근간이다. 먼 과거부터 정치의 근본은 국민들에게 밥을 먹이는 거다. 국밥 한 그릇 속에 그 키워드를 녹여냈다는 것이 ‘이명박 국밥 광고’가 여전히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광고의 무대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일요신문은 1월 23일 정치 광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던 무대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명박 국밥집’이라 불리는 이 식당은 2022년에도 정상영업 중이다. 서울시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 강원도집이다. 이 식당은 여전히 돼지국밥을 6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식사시간대가 아닌 오후 4시 30분에도 식당은 만석이었다.
6000원짜리 돼지국밥을 주문하자 ‘이명박 먹방’에 등장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국밥 한 그릇이 등장했다. 가게 풍경에서부터 국밥 안에 들어 있는 풍성한 건더기 양까지 과거 어느 시점에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게 인테리어는 2007년 대선 광고에 등장했을 때와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신문물’이 들어왔다. 바로 에어컨과 TV였다. 대선 광고에 등장했을 당시 ‘궁서체 메뉴판’이 걸려 있던 위치의 절반씩을 에어컨과 TV가 나눠 가지고 있었다. 가게 내부엔 여기가 이 전 대통령이 국밥 광고를 찍었던 곳이란 힌트가 전혀 없었다. 2007년 그때 그 감성 그대로 음식 판매에만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게를 채운 고객들은 2030세대로 보이는 커플부터 시작해 노인까지 다양했다. 오후 5시부터 식당을 들어가는 초입에 대기 손님이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대기 손님이 식당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직원들은 국밥이나 요리에 들어갈 돼지고기를 손질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여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밥 광고를 찍었던 곳이 맞느냐’는 질문에 강원도집 사장 김 아무개 씨는 “여기가 그 식당이 맞다”고 했다. ‘이명박 국밥집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고객이 많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총각들이 많이 온다”면서 “인터넷을 보고 오시는지 많이들 알아봐 주고 찾아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광고 당시 화제를 모았던 ‘욕쟁이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취재 결과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강원도집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강원도집 사장 김 씨는 “당시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에게 광고에 출연할 수 있겠냐는 제의가 왔는데,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출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 강 아무개 씨는 다른 역에서 ‘닭똥집’을 전문으로 팔고 있는 상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광고 촬영을 하러 낙원동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고 갔는데, 알고 보니 그 광고가 이명박 전 대통령 광고였다고 한다. 강 씨는 강원도집에 도착한 뒤 광고 촬영 상대가 대선 후보라는 것과 상관없이 천연덕스러운 연기력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강원도집에서 만난 시민 정 아무개 씨는 “국밥이 6000원인데 가성비가 굉장히 좋다”면서 “밑반찬도 대여섯 가지나 나온다”고 했다. 정 씨는 “코로나19로 음식 가격도 오르고 배달료도 오르는데 이곳 가격과 품질은 그대로”라면서 “세월의 흐름과 별개로 이곳만큼은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줘 자주 찾게 된다”고 했다. ‘여기가 이명박 국밥집인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곳이 이명박 국밥집인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