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직후 중대산업재해 잇따라 로펌에 문의 빗발…“윗선 관여 입증해야 하는데 실제 처벌 가능하겠나”
#누가 중대재해처벌법 1호 되나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를 막기 위한 의무·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법 시행 사흘째인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석재 발파를 위해 구멍을 뚫던 중 토사가 붕괴해 작업자 3명이 매몰돼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법이 시행된 이래 발생한 첫 중대산업재해로, 인재였다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 책임자인 현장소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경기북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작업장에서는 안전망과 안전성 검사 등 사전 안전 작업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이조차도 없었다. 1800kg에 달하는 폭약을 사용하면서도 발파작업 일지에는 현장소장의 결재도 없었다. 현장소장은 사고 이후에야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천공 작업 역시 제대로 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화약류 관리기사 1급 자격증을 보유한 관리 책임자가 천공 지점을 정하고 천공기사가 땅을 뚫어야 하지만, 사고 당시 자격증이 없는 채석 담당자가 천공 지점을 정했다. 노동당국 등에서는 삼표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와 함께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등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안전보건 점검일지, 발파계획서 등 압수물을 분석하면서 사고 원인과 책임자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또, 이종신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당국이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해 형사사건화 했다는 뜻인데, 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첫 피의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10여 일 동안 중대산업재해는 삼표산업 사건 외에도 2건이 더 발생했다. 2월 8일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사고로 2명이 숨졌고, 사흘 뒤에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8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삼표산업이 아니더라도, 기소되는 경우가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의 셈이 복잡해지는 대목이다.
#법원 “적용 가능 여부 신중해야”
로펌 등 법조계도 발 빠르게 법에 대한 우려 섞인 지적을 내놓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전에는 기업의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는 정도가 전부였다. 심지어 이마저도 유죄 판단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직접 범죄 행위에 참여하거나 관여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의 경우 ‘대표가 이를 알고 방관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적용돼 기소되는 기업 관계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유죄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개별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안전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교육까지 알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중대재해라고 하더라도, 과실이 어느 단계에서 발생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현장을 벗어나기 힘든 게 산재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임원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명시했지만, 거꾸로 그 불명확한 기준이 더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선 부장판사는 “과태료 수준이 아닌, 징역형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이기 때문에 더더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범죄 혐의에 관여하거나 이를 지시했다는 구체성도 없이 ‘사고가 났으니 처벌한다’는 것은 형사재판의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지점도 있다. 첫 케이스로 기소된 기업이 있다면 해당 기업의 변호인 측에서는 법 조항을 문제 삼아 무조건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헌재에서도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기업들이 현장소장 등에게 명확한 공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안전 교육도 실시했지만 노동자의 실수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책임이 본사 임원, 대표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사고의 규모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사고마다의 책임을 규명해 본사에도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바꾸거나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기준을 높이는 게 더 적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펌들마다 기업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대형 로펌의 형사파트 담당 파트너 변호사는 “고객이었던 기업들이 앞 다퉈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문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판례도 없고 관련 가이드라인도 없어 우리 로펌 측에서 판단한 안전교육 및 대응 방향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라며 “법의 취지는 알겠지만, 적어도 적용 대상 범위를 축소하거나 처벌을 높은 금액의 과태료로 했다면 지금처럼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첫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는 삼표산업 역시도 김앤장과 광장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겼다. 기소가 될 경우까지 대비해, 적극적으로 다퉈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형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경찰 단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더라도, 검찰 기소나 법원 판결 단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해 적용하려 할 것이고 이를 검찰도 알기 때문에 무리하게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결국 수사기관들이 얼마나 ‘안전 관련 교육이나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를 어느 정도 윗선까지 관여했는지’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고 이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사의 임원이나 대표까지 기소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